충목왕(忠穆王) 때 정치도감(整治都監)의 녹사(錄事), 충정왕 때 시학(侍學)이 되었다. 1351년 충정왕이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될 때 전교승(典校丞)으로 시종하려다가 체포되어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
1377년(우왕 3)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로서 금적사(禁賊使)가 되어 압물중랑장(押物中郎將) 방지용(房之用) 등과 함께 왜구의 단속을 의뢰하고자 일본에 갔다가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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