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공조참판 윤보(尹甫)이며,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尹汝弼)의 아우이다.
1504년(연산군 10) 이세좌(李世佐) 문죄 때 연루되어 수장(受杖)된 뒤 변방지역으로 귀양갔다가 충주로 옮겼으며, 1506년 중종이 즉위하자 풀려났다.
이듬해 선전관·훈련원주부·감찰을 역임하였다. 그 뒤 형관(刑官), 1512년(중종 7)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 1515년 상의원판관(尙衣院判官)을 지냈다. 1517년 돈녕부첨정이 되고, 1528년 돈녕부정으로 승진하였으며, 훈련원정을 거친 뒤 1534년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를 거쳐, 영흥부사(永興府使)가 되었다.
이어 1538년 충청도수군절도사가 되고, 1541년에는 남양부사·충청도병마절도사를 차례로 지냈다. 1543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서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역모사건에 관련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