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손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사록(南京司錄)이 되고, 우정언 지내지(右正言知內旨)를 지낸 뒤 공주부사로 부임, 농상(農桑)을 권장하여 칭송을 받았다.
뒤에 우사간을 거쳐 충선왕 초에 사헌집의·우대언 지선부사(右代言知選部事)·예문관사백(藝文館司伯)·밀직부사·선부전서(選部典書)를 역임하고 제주와 해주목사로 부임, 선정을 베풀었다.
1318년(충숙 5) 2월 제주인 김성(金成) 등이 학정에 못 이겨 난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자 하였는데, 난민들이 이백겸이 부임하면 난을 그치겠다 하므로 다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이들을 선무함으로써 난이 종식되었다. 1321년 정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으며, 같은 해 5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