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공민왕 때 자제위 소속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74년(공민왕 23)
본관
교하(交河)
관련 사건
공민왕 시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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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노선은 고려 후기 공민왕 때 자제위(子弟衛) 소속 관리이다. 1374년(공민왕 23) 9월 환관 최만생과 홍륜을 비롯한 자제위 소속 관리들이 공민왕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노선은 끝까지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결국 참수되었다.

정의
고려 후기, 공민왕 때 자제위 소속 관리.
가계 및 인적 사항

노선(盧瑄)의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할아버지는 충정왕 때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지내고 경양부원군(慶陽府院君)에 봉해진 노책(盧頙)이며, 할머니는 충렬왕 때 좌중찬(左中贊)을 역임한 평양조씨 조인규(趙仁規)의 딸이다. 아버지 노진(盧稹)은 1372년(공민왕 21)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재직하면서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에 다녀왔으며, 어머니 남양홍씨는 충숙왕 때 삼사사(三司使)를 역임한 홍융(洪戎)의 딸이다.

주요 활동

노선은 홍륜(洪倫) · 한안(韓安) · 권진(權瑨) · 홍관(洪寬) 등 문벌 출신 인물들과 함께 자제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자제위는 1372년(공민왕 21) 10월 왕권을 강화하고, 신변 호위 및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궁중에 설치된 공민왕의 측근 기구이다. 공신과 고위 관직자의 자제를 선발하여 배속시켰으며 대언(代言) 김흥경(金興慶)이 그 운영 책임자였다.

1374년(공민왕 23) 9월 22일, 환관 최만생(崔萬生)과 홍륜(洪倫)을 비롯한 자제위 소속 관리들이 왕을 시해(弑害)하였다. 『고려사』 등 사서에서는 시해사건의 배경을 국왕과 자제위 소속 관리의 음란 행위에서 찾고 있으나, 그것보다는 원명 교체 시기의 불안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세력 간의 갈등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 발생 후 노선을 비롯한 사건 가담자는 모두 참수되었으며, 가산이 몰수되고 그 가족들도 유배되거나 노비로 배속되었다. 노선은 한안과 함께 끝까지 시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결국 참수되었다. 1376년(우왕 2)에는 아버지 노진(盧稹)과 형 노정(盧楨) · 노균(盧鈞)도 참수되었다.

1389년(공양왕 1) 11월 노선의 누이가 공양왕비 순비(順妃)가 되면서 아버지 노진은 제효공(齊孝公)으로, 어머니 홍씨는 명의비(明懿妃)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교하노씨족보(交河盧氏族譜)』
『씨족원류(氏族源流)』

단행본

홍영의, 『고려말 정치사 연구』(혜안, 2005)

논문

이정신, 「공민왕의 죽음과 국내외정세」(『한국사학보』 67, 고려사학회, 2017)
유경래, 「여말선초 교하노씨 가문의 정치적 동향」(『한중인문학연구』 26, 한중인문학회, 2009)
이용주, 「공민왕대의 자제위에 관한 소연구」(『소헌 남도영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1984)
황운용, 「고려 공민왕대의 대원 · 명관계」(『동국사학』 14, 동국역사문화연구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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