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은 홍륜(洪倫) · 한안(韓安) · 권진(權瑨) · 홍관(洪寬) 등 문벌 출신 인물들과 함께 자제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자제위는 1372년(공민왕 21) 10월 왕권을 강화하고, 신변 호위 및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궁중에 설치된 공민왕의 측근 기구이다. 공신과 고위 관직자의 자제를 선발하여 배속시켰으며 대언(代言) 김흥경(金興慶)이 그 운영 책임자였다.
1374년(공민왕 23) 9월 22일, 환관 최만생(崔萬生)과 홍륜(洪倫)을 비롯한 자제위 소속 관리들이 왕을 시해(弑害)하였다. 『고려사』 등 사서에서는 시해사건의 배경을 국왕과 자제위 소속 관리의 음란 행위에서 찾고 있으나, 그것보다는 원명 교체 시기의 불안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세력 간의 갈등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 발생 후 노선을 비롯한 사건 가담자는 모두 참수되었으며, 가산이 몰수되고 그 가족들도 유배되거나 노비로 배속되었다. 노선은 한안과 함께 끝까지 시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결국 참수되었다. 1376년(우왕 2)에는 아버지 노진(盧稹)과 형 노정(盧楨) · 노균(盧鈞)도 참수되었다.
1389년(공양왕 1) 11월 노선의 누이가 공양왕비 순비(順妃)가 되면서 아버지 노진은 제효공(齊孝公)으로, 어머니 홍씨는 명의비(明懿妃)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