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운집』은 조선 전기, 무신 · 학자 정충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4년에 간행한 시 문집이다. 청나라에 절화(絶和)를 고하러 가는 사신을 의주에 머물러 두게 하고 절화의 부당함을 아뢴 「여체찰연명소」가 실려 있다. 차(箚) 3편은 저자가 1630년과 1631년에 올린 것으로 모두 군무에 관한 내용이며, 서(書) 15편은 대부분 북쪽 지역을 방비하는 전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만운집』은 6권 2책의 활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정되어 있다.
『만운집』은 권1에 시 31수, 권2에 소(疏) 11편과 차(箚) 3편, 권3에 서(書) 15편, 제문 1편, 축문 2편을 싣고 있다. 부록으로 권1에 교서(敎書) 3편, 제문 3편, 만시(輓詩) 13수, 권2에 주3와 연보(年譜), 권3에 시장(諡狀) · 척록(摭錄) 등을 싣고 있다.
「여체찰연명소(與體察聯名疏)」는 1633년에 체찰사 김시양(金時讓)과 함께 올린 소(疏)인데, 청나라에 주4를 고하러 가는 사신 김대건(金大乾)을 의주에 머물러 두게 하고 절화의 부당함을 아뢴 내용이다.
본집 3편의 차자(箚子)는 저자가 1630년(인조 8) 8월부터 다음 해 8월까지 1년 동안 광량진(廣梁鎭)에 있으면서 작성해 올린 글로, 당시의 군사에 관한 일을 다루고 있다. 이 글에는 정묘호란(1627)을 일단 화해로 무마한 현 상황에서, 주5로써 그들의 감정을 다시 자극하지 말고, 주6를 늘리길 요구하는 그들의 요청을 계속 들어줌으로써 전쟁이 닥칠 때를 늦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주7에서 군대를 골라 주8을 방어하는 현재의 정책을 멈추고, 용강(龍岡) · 함종(咸從)에서 선천(宣川) · 의주(義州)까지 서북 10개 지역을 각기 그 인근인 삼화(三和) · 증산(甑山) 또는 철산(鐵山) · 용천(龍川) 등의 지역과 함께 성을 쌓고 방어하게 만들어서〔合築 · 合守〕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해면에서도 백령도(白翎島)와 같은 방법으로, 초도(椒島) · 석도(席島)에 주민들을 입주시켜 전투와 방어〔戰守〕에 두고두고 대비하게 만들어야 주9에 장기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외에 또 다른 소소한 방략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서(書) 15편은 거의 모두가 북쪽 지역을 방비하는 전략적 내용이 담긴 것으로, 최명길(崔鳴吉) · 강홍립(姜弘立)과 당시 가도(椵島)에 있던 명나라 장수 황룡(黃龍) · 심세괴(沈世魁)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중에서 강홍립에게 보낸 편지는 맹약을 어기고 우리의 백성과 말〔人馬〕을 약탈해 간 금병(金兵)에게 말을 잘하여, 우리의 백성과 말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교섭하라는 내용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만운집』의 원문과 이미지 · 해제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