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백석헌유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978년에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구한말 일제의 가세가 강해지자 집안 식구들과 지리산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던 저자의 척사위정의 학문 정신을 문집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8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구성과 내용
저자는 일본에 개항한 이후 개화 정책에 반대하여 「삼정책(三政策)」을 올리고 고향에 은거했는데, 문집에 전하는 시는 서울에서 지은 것과 지역에서 지은 시로 크게 구분된다. 서울에서 지은 시는 낙사(洛社)에서 지은 작품이 많고, 지역에서 지은 시는 일상 생활에서 문안하거나 교유하면서 지은 작품이 많다.
서간문은 서울에 있을 때 쓴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아버지 기윤진과 아들 우승(宇承) · 우춘(宇春)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친정(上親庭)」은 1853년 4월 17일부터 1874년까지 집에 보낸 편지로, 안부를 물은 것 외에 교우와 조정의 동향, 이양선의 출몰 등 국내외 정세 등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 많다.
잡저 중에서 1862년에 작성한 「삼정책(三政策)」, 1868년에 작성한 「척양사론(斥洋邪論)」은 저자의 대표적인 글로, 「삼정책(三政策)」은 당시 삼정이 문란해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내외의 정세가 어지럽게 되자 이에 대한 대책을 밝힌 것이다. 성심(聖心)을 바로 해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 기강을 바로잡을 것, 수령을 바로 임명할 것, 관리를 다스려 무위도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척양사론(斥洋邪論)」은 당시 서양 세력이 문호 개방을 요구해오는 데 대한 논설이다. 노불양묵(老佛楊墨)의 이단보다 심한 무리이기 때문에 정학(正學)을 밝혀 척사의 근본을 세울 것을 촉구하였다.
한편 「용학서언심언성책(庸學序言心言性策)」에서는 『중용』의 솔성(率性)과 『대학』의 정심(正心)의 관계를 논하였다. 『중용』은 전심(傳心), 『대학』은 복성(復性)의 글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효책(孝策)」에서는 학문하는 사람은 효도를 한 뒤에야 학문하는 도를 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 「계유일기(癸酉日記)」는 1873년 2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회시(會試)의 시관으로 참가했던 전후 사실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 과거 시행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현황
참고문헌
원전
- 기양연, 『백석헌유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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