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875년(고종 12) 후손 영두(永斗)가 병자호란에 타다 남은 유집 15권을 간추려 편집, 간행한 것이다. 권두에 송병선(宋秉璿)의 서문과 권말에 유최기(兪最基)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는 부(賦) 1편, 시 93수, 서(書) 8편, 권3은 서(序) 3편, 기(記) 4편, 발(跋) 1편, 찬(贊) 6편, 전(傳) 1편, 잡저 4편, 권4는 부록으로 행장과 묘갈명 각 1편, 제문 10편, 만사 12수, 스승인 성수침(成守琛)으로부터 온 편지와 벗들로부터 온 편지 5편, 차운시(次韻詩) 약간 편, 집의(執義)로 증직된 데 대한 권말의 문적, 그리고 연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노래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문장이 아담하고 유창하다는 후세의 평을 듣고 있다. 「남여지도(覽輿地圖)」라는 시는 그때에 벌써 지도가 그려져 영광고을에까지 흘러들었음을 알게 한다.
서 가운데 「유향중서(諭鄕中書)」 두 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6월과 10월 고을에 돌린 창의서(倡義書)이다.
잡저의 「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4월 12일부터 소강상태에 접어든 1594년 정월 초사흘까지 약 20개월간의 전라도의병 활동상황과 조정의 대처방안, 또는 헛소문에 놀라는 민심의 향방, 호남이 책임졌던 군량미 조달과정, 그 자신이 의병으로 나서서 성을 지키면서 치르던 여러 가지 일들이 기술되어 있어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활동상황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용산지(龍山誌)」는 그가 거처하는 정자의 배경을 낱낱이 밝힌 것으로 무려 87개의 물명(物名)이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