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밥 · 약반(藥飯)이라고도 한다. 정월 대보름에 먹는 절식의 하나이다. 그리고 약식은 회갑 · 혼례 등의 큰 잔치에 많이 만들어 먹는다.
약식이라 하게 된 것은 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꿀을 흔히 약(藥)이라 한다. 따라서, 밀주(蜜酒)를 약주(藥酒)라 하고, 밀반(蜜飯)을 약반(藥飯),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 말한다.”고 하여 약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약식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 정월 15일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이때에 날아온 까마귀가 왕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모반하려는 신하와 궁주(宮主)를 활로 쏘아 죽이고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때부터 정월 15일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여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지냈다. 약식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찰밥에 기름과 꿀을 섞고 잣 · 밤 · 대추를 넣어 약식으로 발전시켰다. 『목은집(牧隱集)』의 「점반(粘飯)」에 “찰밥에 기름과 꿀을 섞고 다시 잣 · 밤 · 대추를 넣어서 섞는다. 천문만호(千門萬戶)의 여러 집에 서로 보내면 새벽빛이 창량(蒼凉)하매 갈가마귀가 혹하게 일어난다.”는 약식을 노래한 시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동국세시기』 · 『열양세시기』 등의 각종 세시기와 『임하필기(林下筆記)』 · 『동국여지승람』 · 『지봉유설』 · 『용재총화』 ·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의 각종 문헌에서 약식의 설명이 나오고 이를 읊은 시도 많이 보인다.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약반을 중국인이 좋아한다. 그들은 이것을 배워서 만들고는 고려반(高麗飯)이라고 한다.”는 내용과 『열양세시기』의 “정월 보름날에 중국에 간 우리나라 사신들이 약식을 만들어 나누어주면 연경의 귀인들이 그 맛을 보고 반색하며 매우 좋아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약식은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깨끗이 씻어 찜통에 찐다. 밤은 삶아 까서 반씩 쪼개놓는다. 대추는 씨를 빼고 4등분한다. 큰 그릇에 찰밥을 담고 꿀 · 흑설탕 · 간장을 넣고 골고루 섞어서 검게 물을 들인다. 대추와 밤 · 잣도 같이 넣고 제일 나중에 참기름을 넣어 골고루 섞는다. 다시 찜통에 넣어 30분간 중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