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집 ()

오재집
오재집
유교
문헌
1917년, 조선 후기 문신 양만용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간행 시기
1917년
저자
양만용(梁曼容)
편자
양선묵(梁璿默)
권책수
10권 2책
판본
목활자본
표제
오재집(梧齋集)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오재집』은 1917년 조선 후기 문신 양만용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0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시, 부, 소, 계, 일기, 논, 책, 제문, 묘지명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유교적 성향과 함께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제언, 가족과 고향에 대한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후손들이 유고를 모아 1917년에 간행하였으며, 양만용 개인의 학문과 함께 서인계 사림 가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의
1917년, 조선 후기 문신 양만용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양만용(梁曼容: 1598~1651)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장경(長卿), 호는 오재(梧齋)이다. 교리(校理)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양응정(梁應鼎)이고, 아버지는 양산축(梁山軸)이다. 강항(姜沆) ·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이다. 집의, 사간, 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서지사항

『오재집(梧齋集)』은 10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두에 송병화(宋炳華)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편찬 및 간행 경위는 자세하지 않다. 송병화가 지은 서문에 ‘양만용의 후손 양선묵(梁璿默)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고 아들 양전(梁琠)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서문을 받아오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권말에는 문집 간행의 총책임자로서 양상준(梁相準)의 이름과 대정(大正) 6년이라는 시기가 적혀 있다. 구체적인 사실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양선묵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간행 사업에 참여하여 1917년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구성과 내용

권1에 부(賦) 1편, 시 104수, 권2에 소(疏) 14편, 계(啓) 4편이 실려 있다. 권3과 권4에는 잠(箴) 2편, 응지문(應旨文) 3편, 기우문 7편, 축문 9편, 제문 3편, 서(書) 1편, 잡저 1편, 명(銘) 1편이 실려 있고, 권5~6은 일기이다. 별집의 권1·2에 부 6편, 시 3수, 표(表) 1편, 논(論) 2편, 책(策) 4편, 명 3편, 송(頌) 2편, 서(書) 1편, 부록으로 제공시서(諸公詩書) · 만장 · 제문 · 세계 · 신도비명 · 묘지명 · 행장 · 행록략 · 행장후기 · 존주록(尊周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인일부(人日賦)」는 인일(人日)에 객과 마주앉아 인생을 논한 작품으로, 천도(天道)의 흐름에 순응하면 인생의 무상함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별집에 수록된 「제시경귀부(題詩徑歸賦)」는 늙어서 사직하고 귀향하는 일에 대해 쓴 작품이고, 「심여일가주부(心如一家主賦)」는 심(心)이 몸의 주체라는 것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입권격체부(入圈擊彘賦)」는 사람과 돼지의 관계를 빗대어 임금과 신하 관계를 논한 글이다. 그 밖에 「수악부(水樂賦)」, 「고두사농이부(叩頭謝瀧吏賦)」, 「역재흉중부재서부(易在胸中不在書賦)」가 있다.

는 증시, 화답시, 전송시, 애도시 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유교적 풍조와 경향을 띠고 있다. 「근민당차정기옹홍명운(近民堂次鄭畸翁弘溟韻)」은 정홍명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전라북도 여산의 근민관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백성의 태평함을 옛 고사를 인용하여 나타내고, 임금과 여산의 지방관을 칭송하고 있다. 「위억룡강강상정(爲憶龍江江上亭)」은 고향의 정자를 떠올리며 지은 시로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고, 「희우(喜雨)」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를 통해 임금의 은덕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칭송하는 작품이다. 「사친(思親)」, 「사자(思子)」, 「사가(思家)」 등 고향을 떠나 있을 때 가족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도 있다.

는 사직을 청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논수사소(論修史疏)」는 사필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로, 송나라 범조우(范祖禹) 등의 말을 인용해 문자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고 주청하였다. 「대기유청종사양현소(代畿儒請從祀兩賢疏)」는 경기 유생을 대신해 이이(李珥)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주청한 글이다. 「진시사소(陳時事疏)」는 현명하고 어진 임금들은 재변이 있으면 항상 경계하고 자신을 가다듬으며 아랫사람들의 간언을 경건히 들었다고 말하고, 정사를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한 글이다.

「논무폐계(論武弊啓)」는 허명무실한 군대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고도의 훈련을 시켜서 국난에 대비해야 함을 주장한 글이다. 「일기초략(日記抄略)」은 설서로 있을 때 대내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들은 대로 빠짐없이 기록해 후일의 참고에 대비한 것이다. 「기주초략(記註抄略)」은 사관으로 『정원일기(政院日記)』를 정리하면서 중요한 사건이나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별도로 기재해 후일 정사(正史)에 잘못됨을 막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가운데 「경전전책(經典殿策)」은 경연에서 경전에 대해 소신을 밝힌 글이다. 「법제책(法制策)」은 법률은 권선징악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려야 되며, 임금보다는 국가의 번영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그 밖에 상제에 대해 의견을 진술한 「상제책(喪制策)」,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 어렵다고 말한 「군신상우책(君臣相遇策)」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양만용의 사상과 문학,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서인계 사림 가문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논문

양승천, 「오재 양만용의 한시 연구」(전남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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