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성군읍지(穩城郡邑誌)』는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서 편찬하였다.
책의 첫머리에 온성군의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한전(旱田), 수전(水田), 전세(田稅), 균세(均稅), 군병(軍兵), 성지(城池), 공해(公廨), 발참(撥站), 창고(倉庫), 조적(糶糴), 인물, 과거(科擧), 효자, 열녀, 북병사(北兵使),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누정(樓亭),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등으로 구성하였다.
공해 항목에 1776년(영조 52)까지의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였고, 창고 항목에 대동고(大同庫)와 사창(司倉) 등 12개 창고의 위치와 곡식의 소장 정도를 상세히 적어 놓아 당시의 지방재정 상태를 알 수 있다. 조적과 진공, 봉름 항목의 재정적 · 경제적 내용이 충실하다. 특기할 사항은, 봉수 항목에 19개의 봉수 위치와 상호 호응 관계, 연혁을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방사 항목에 도리(道里)와 호구(戶口)를 첨부하여 사계(四界)와 이명(里名), 호구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능침 항목에서는 조선 태조의 선조부터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대한 내용도 있다. 전결 항목은 환총과 군총, 진공, 방물(方物), 선세(船稅)를 포함하고 있고, 창고와 봉름 항목도 내용이 풍부하다. 능침과 사원, 고적 항목의 문화적 내용도 충실하며, 해진과 염판, 어량은 특이한 항목이다.
사회경제적 상황을 충실하게 기재하였으며, 역사 문화와 관련한 내용을 대폭 보강하였다. 19세기 후반 제도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어, 당시 온성군 지역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1851년(철종 2)의 주3, 1872년(고종 9)의 『관북읍지(關北邑誌)』와 『북관읍지(北關邑誌)』에 수록된 「온성읍지」, 1900년(광무 4)경의 주4 등과의 비교를 통해 온성 지역과 읍지의 시계열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