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일치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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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유교와 불교의 사상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뜻이 일치한다는 이론을 가리키는 종교용어. 유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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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유교와 불교의 사상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뜻이 일치한다는 이론을 가리키는 종교용어. 유교용어.
연원 및 변천

유불일치론은 중국에서 먼저 대두되었다. 예(禮)를 권위로 삼는 유교윤리의 중국사회에 처음 불교가 전해지자, 오계(五戒)라는 불교의 실천윤리를 유교의 오상(五常)이나 오륜(五倫)과 어떻게 일치,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불교측에 있어서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오계를 오상과 일치시켜 중국사상에 합치시키는 일은 불교를 중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위(北魏) 때의 담정(曇靖)은 『제위파리경(提謂波利經)』이라는 위경(僞經: 부처가 설하지 않은 경전)을 만들어서 오계와 오상의 일치를 꾀하였다. 그 뒤에도 중국에서는 유밀(劉謐)의 『삼교평심론(三敎平心論)』을 비롯하여 계숭(契嵩)의 『보교편(輔敎篇)』, 장상영(張商英)의 『호법론(護法論)』 등을 통하여 유불일치를 꾀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와 고려 때는 불교가 그 사회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고 유교가 사회적으로 크게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불일치론은 현실적으로 승려들 사이에서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사정은 자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려 말부터 송학(宋學)이 전래되면서 중국의 경우처럼 고려에도 배불론이 크게 등장하였고, 조선 초기에 억불정책을 시행하게 되자 불교측에서 유불일치론을 주창하게 된 것이다.

그 최초의 인물은 기화(己和)였다. 기화는 『현정론(顯正論)』을 저술하여 유교와 불교의 근본정신과 실천윤리가 다르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또한, 기화의 저술로 추정되고 있는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은 유교의 음양 · 오행 · 심(心) · 성(性) · 이(理) · 기(氣) 등을 불교의 교리와 비교, 해석하여 그 일치점을 모색한 매우 논리적인 저서이다. 조선 중기의 보우(普雨)「일정설(一正說)」을 지어 유교의 성명(性命)과 천리(天理)에 관한 학설을 밝혔고, 휴정(休靜)『삼가귀감(三家龜鑑)』을 지어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처능(處能)은 『인의설(仁義說)』 · 『성명설(性命說)』 · 『간폐석교론(諫廢釋敎論)』 등을 저술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 유교와 불교가 새의 두 날개 또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구실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숙종 때의 대지(大智)는 『심성론(心性論)』을 저술하여 유교의 무극(無極)을 불교의 법신(法身)에 대비시키는 등 두 종교의 매우 깊은 사상을 원천적으로 결합시켜 보고자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현정론(顯正論)』
『심성론(心性論)』
『백곡집(白谷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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