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 박태보 등이 쓴 기문(記文)과 발문(跋文) · 시(詩)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총 5점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선생 임명시 성삼문과 이개가 죽음을 앞두고 쓴 시이다. 칠언절구 각 1수씩을 음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판각은 박팽년의 후손인 박기정이 영월부사로 있으면서 1791년(정조 15)에 창절사(彰節祠를 중건할 때 관찰사 윤사국에게 부탁하여 글씨를 쓴 것이다.
육신사기 1685년(숙종 11) 송시열이 써서 게판(揭板)하였던 것을 박기정이 개간(改刊), 게판한 것의 탁본이다.
제육신사기후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가 기록한 것으로 송시열이 기록한 「육신사기」가 한 때 철거되었다가 임진원에 의해 다시 개모간행(改寫刊行)되고, 동시에 서판(舊板)을 수습하여 원 자리에 걸게 된 전말을 적었다.
육신사우기 당시 이천현감으로 있던 박태보가 적었는데, 구본(舊本)이 못 쓰게 되어 증손인 박화원(朴和源)이 다시 써서 걸게 된 것이다.
이 자료는 숙종조(肅宗朝) 사육신(死六臣)의 복권을 주도한 송시열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순천 박씨와의 깊은 인연이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