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사기첩 ()

조선시대사
문헌
18세기 말~19세기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육신사의 처마 밑에 걸려 있던 현판을 탁본하여 합철한 첩.
이칭
이칭
육신사기첩
문헌/고서
간행 시기
18세기 말
권책수
1책
판본
탁본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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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육사신기』는 18세기 말~19세기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육신사(六臣祠)의 처마 밑에 걸려 있던 현판을 탁본하여 합철(合綴)한 첩(帖)이다. 양선생 임명시(兩先生臨命詩), 육신사기(六臣祠記), 제육신사기후(題六臣祠記後), 육신사우기기(六臣祠宇記), 육신보우상량문(六臣輔宇上粱文) 등 5점을 탁본하여 합철하였다.

정의
18세기 말~19세기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육신사의 처마 밑에 걸려 있던 현판을 탁본하여 합철한 첩.
서지 사항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첩(帖) 형식으로 되어 있고 34절(折) 68면(面)이다. 크기는 29.7×18.4㎝이다. 본문은 모두 음각(陰刻) 소자(小字)이고 서체는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이 혼합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

송시열 · 박태보 등이 쓴 기문(記文)과 발문(跋文) · 시(詩)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총 5점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양선생 임명시 성삼문이개가 죽음을 앞두고 쓴 시이다. 칠언절구 각 1수씩을 음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판각은 박팽년의 후손인 박기정이 영월부사로 있으면서 1791년(정조 15)에 창절사(彰節祠를 중건할 때 관찰사 윤사국에게 부탁하여 글씨를 쓴 것이다.

  2. 육신사기 1685년(숙종 11) 송시열이 써서 게판(揭板)하였던 것을 박기정이 개간(改刊), 게판한 것의 탁본이다.

  3. 제육신사기후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가 기록한 것으로 송시열이 기록한 「육신사기」가 한 때 철거되었다가 임진원에 의해 다시 개모간행(改寫刊行)되고, 동시에 서판(舊板)을 수습하여 원 자리에 걸게 된 전말을 적었다.

  4. 육신사우기 당시 이천현감으로 있던 박태보가 적었는데, 구본(舊本)이 못 쓰게 되어 증손인 박화원(朴和源)이 다시 써서 걸게 된 것이다.

  5. 육신보우상량문(六臣輔宇上粱文) 울진현령이었던 오도일이 기록한 것으로, 역시 글씨는 윤사국이 썼다.

의의 및 평가

이 자료는 숙종조(肅宗朝) 사육신(死六臣)의 복권을 주도한 송시열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순천 박씨와의 깊은 인연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인물사연구원, 『계유년의 역신들』(타오름, 2011)

논문

정만조, 「肅宗朝의 死六臣 追崇과 書院祭享」(『한국학논총』 33,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혁(경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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