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로 상아탑(象牙塔) 황석우(黃錫禹)가 주재하여 장미촌사(薔薇村社)에서 1921년 5월 24일자로 간행하였다.
발행인은 변영서(邊永瑞 :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이고 편집인은 황석우로 되어 있다. 황석우가 이 잡지 출판의 모든 것을 주재한 것인데,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음은 그 당시 외국인명으로 잡지의 발행허가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석우는 이보다 앞서 폐허동인(廢墟同人)에 참여하여 김안서(金岸曙)와 함께 ≪폐허≫ 창간호를 주재했다가 곧바로 거기서 손을 떼고 ≪장미촌≫을 간행한 것이다.
동인으로는 변영로(卞榮魯)·오상순(吳相淳)·박종화(朴鍾和)·박인덕(朴仁德)·노자영(盧子泳)·박영희(朴英熙)·정태신(鄭泰信)·이훈(李薰)·신태악(辛泰嶽) 등이 있는데, 이들 중 변영로·오상순·황석우는 폐허동인이었고, 박종화·박영희·노자영 등은 후에 백조동인(白潮同人)에 참여했다.
≪장미촌≫은 총 24면의 소책자로 창간호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중요시되고 있음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라는데 있고, 또 그 동인들의 활동이 그만큼 문학사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권두의 <선언 宣言>과 권말의 <동인의 말>을 제외하고 그 편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미촌>(변영로)·<장미촌의 향연>(황석우)·<장미촌의 제1일의 여명>(황석우)·<최후의 고향>(又影)·<생과 사>(槿圃)·<피어오는 장미>(春城)·<적(笛)의 비곡(悲曲)>(懷月)·<우유(牛乳)빗 거리>(月灘)·<콜넘버스>(朴仁德 譯)·<신월(新月)의 야곡(夜曲)>(李虹)·<춘 春>(李薰) 등과 결미의 <동인의 말>에서는 동인들의 동정(動靜)을 알리고 있다.
잡지의 표제 밑에 붙인 ‘자유시(自由詩)의 선구(先驅)’란 부제와도 같이 주재자인 황석우가 이전서부터 주장해온 시론의 일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인간으로서의 참된 고뇌의 촌에 들어 왔다. 우리들의 밟아 나가는 길은 고독의 끝없이 묘막(渺漠)한 설원(雪原)이다.······ 장미, 장미, 우리들의 손에 의하여 싹나고, 길리고, 또한 꽃피려는 장미”라고 한 권두의 <선언>이 있다.
이를 보아 동인들의 작품에 나타난 특색은 한마디로 물질을 토대로 한 현실세계를 초극하고자 하는 지향이 관념적 이상향에 대한 동경(憧憬), 곧 자연이나 죽음, 혹은 신세계나 애인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인들의 동일한 시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취향(趣向)에 따라 상징주의적 경향이 우세하거나 낭만주의적 경향이 우세하거나 한 것을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