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정조 대 문신 윤행임이 집안에서 전해 오던 태종 대 윤임에게 발급된 왕지가 쓰인 고신과 인조 대 윤계에게 발급된 교지가 쓰인 고신을 첩으로 묶고 시말을 적어 보관한 문서철.
제작 및 발급 경위
형태와 내용
윤임의 왕지 하나는 1402년 4월 16일에 윤임을 ‘가선대부 황주목사 겸 권농병마단련사’에 제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409년 2월 25일에 윤임을 ‘통훈대부 인녕부 우사윤’에 제수한다는 것이다. 이 두 점의 고신은 첫 머리에 적힌 왕지라는 문구와 조선국왕지인이 안보되었다.
왕지는 충렬왕 대에 처음 등장하는 용어인데 충렬왕 당시 몽골제국의 부마국으로서의 지위에 맞추어 이전에 선지(宣旨)라 칭하던 왕명을 왕지로 낮추어 부른 것이다. 이 왕지가 세종 대에 이르러 교지로 바뀌고 19세기 말까지 지속된다. 한편 조선국왕지인은 조선 전기 고신 가운데에서 가장 빠른 사례로서 주목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박성호, 『왕명문서 연구-고려말 조선초』(한국학술정보, 2017)
논문
- 박성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선초기 왕명문서의 고문서학적 가치」(『고궁문화』 7호, 국립고궁박물관, 2014)
- 박성호, 「현재 전하고 있는 王旨의 진위 고찰」(『정신문화연구』 120,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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