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좌참찬,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다음해 홍문관박사가 되고 부수찬 · 정언을 거쳐, 1576년 헌납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승진했다고 인혐(引嫌: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함.)하였다. 그 뒤 1583년 용담현령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589년 응교 재직중, 전염병이 만연하자 충청도에 파견되어 치제(致祭)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군으로 어가(御駕)를 호종하였다. 그리고 좌부승지에 오른 뒤 우승지 · 좌승지로 선조의 측근에서 뒷바라지를 하였다. 이듬해 9월 환도(還都)에 앞서 “경중인(京中人)의 진휼(賑恤)에 전력을 다하라.”는 특지(特旨)를 받고 한성판윤에 임명되었다.
환도 후 염철사(鹽鐵使)를 겸임하면서, 경기 · 황해 · 충청 · 전라도 해변의 소금을 전국 각지에 보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할 것을 진언하였다. 1594년 진휼사를 겸하면서는 겨울 동안 얼어죽은 자가 나타날 것을 우려, 왜적이 소장했던 피복을 나누어 줄 것을 진언하였다. 1595년 대사헌이 되고 약방제조(藥房提調)를 겸하였다.
이후 동지중추부사 · 지춘추관사 겸 이조판서 · 예조판서 · 우참찬 ·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600년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가 죽자 빈전도감(嬪殿都監제조(提調)가 되었다. 이어 좌참찬 · 형조판서 등을 거쳐 1604년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당흥부원군(唐興府院君)에 봉해졌다. 1609년(광해군 1) 관상감제조가 되었으나, 북인이 집권하자 사퇴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저서로는 『퇴촌유고』가 있다. 시호는 단민(端敏)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 『동계집(桐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기재잡기(寄齋雜記)』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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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태종 때 인진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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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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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식년마다 보던 식년과의 시험 가운데 문과를 이르는 말. 식년과에는 식년 문과, 식년 무과, 식년 잡과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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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셋째 등급. 문과(文科)에서는 23명, 무과(武科)에서는 20명을 뽑아 정구품의 품계를 주었으며, 성균관ㆍ승문원ㆍ교서관의 임시직인 권지(權知)에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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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홍문관에 속한 교리, 수찬 등을 임명할 때의 제1차 인선 기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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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신라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둔, 현(縣)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오품이며 신라 때에는 대소의 구별이 없이 각 현에 두었다가, 고려ㆍ조선 시대에는 큰 현에만 두었으며, 작은 현에는 감무 또는 현감을 두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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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를 제사 지내던 일. 또는 그 제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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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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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임금의 특별한 명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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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임금에게 올리는 약을 감독하던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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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이조의 으뜸 벼슬. 정이품의 문관 벼슬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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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조선 시대에 둔 예조의 으뜸 벼슬.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판서를 고친 것으로 정이품 문관의 벼슬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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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조선 시대에, 중추부에 속한 정이품 무관(武官)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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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조선 시대에 둔, 형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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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조선 시대에 둔, 의금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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