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비궁 ()

근대사
제도
대한제국기, 황태자비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
제도/관청
설치 시기
1897년
폐지 시기
1910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황태자비궁은 대한제국기에 황태자비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청일전쟁 이후 왕실 의례 격상에 따라 왕세자빈(王世子嬪)이 왕태자비(王太子妃)로 변경되면서 1895년에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왕태자비궁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황태자비궁으로 변경되었다. 산하에 친왕(親王) 관련 업무를 맡았던 친왕부(親王府)를 두었다.

정의
대한제국기, 황태자비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
설치 목적

조선시대에 황태자비궁의 전신에 해당되는 개념은 왕세자빈궁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왕세자의 배우자인 왕세자빈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줄여서 ' 빈궁(嬪宮)'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따라서 '왕세자빈궁'은 경우에 따라 왕세자빈 자신을 지칭하기도 하고 세자빈을 수발하는 궁(宮)을 뜻하기도 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직제로 명확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1894년에 청일전쟁을 계기로 전통적인 중국과의 사대 질서 청산을 위해 고종의 칭호를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로 높이는 의례의 격상이 이루어지면서 왕세자빈도 왕태자비로 격상되었다. 그에 따라 1895년 4월 2일자의 '포달(布達) 제1호'를 통해 왕태자비 관련 업무를 관할하는 조직으로 왕태자비궁이 정식으로 왕태후궁(王太后宮) · 왕후궁(王后宮) · 왕태자궁(王太子宮) 등과 함께 궁내부 관제의 일부로 규정되었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에 따라 국체가 황제국으로 변경되면서 1897년 '포달 제36호'를 통해 황태자비궁으로 개정되었다.

기능과 역할

황태자비궁은 황태자의 배우자인 황태자비 관련 제반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관서로, 한편으로 전근대의 왕세자빈궁과 마찬가지로 황태자비 그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으로도 계속 사용되었다. 기본 직제는 1895년 왕태자비궁을 설치할 당시 대표자로 주임관(奏任官)대부(大夫) 1명과 그 휘하에 판임관(判任官)인 주사(主事) 2명이 배정되었으며, 이후 대부 1명이 증치되었다.

황태자비궁의 역할이 보다 커지게 된 계기는 그 휘하에 친왕부가 설치되면서였다. 친왕은 황제국인 중국의 황실 봉작제에서 황제의 적장자인 황태자 이외의 아들에게 내리는 칭호로서, 조선이 황제국으로 국체가 바뀜에 따라 의화군(義和君) 등 고종의 아들들을 친왕으로 책봉하고 이들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친왕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에 1900년 8월 8일자 '포달 제60호'를 통해 친왕부를 황태자비궁 휘하에 설치하게 되었으며, 조직은 주임관인 부령(府令) 1명과 판임관인 전위(典衛) 2명을 두었다.

변천 사항

황태자비궁은 1906년 12월 30일의 '포달 제144호'를 통해 원래 1명이었던 대부가 추가로 1명을 더 배치하였다. 산하 조직인 친왕부는 1902년 3월 2일에 '포달 제78호'로 궁내부 관제가 개정될 때 관할하는 업무로, 종래 부의 사무와 화계 관장 이외에 보좌 · 강학(講學) · 호종(護從) 기능이 추가되었고, 직원도 칙임관(勅任官)총판(總辦) 1명, 주임관인 찬위(贊尉)전독(典讀) 각 1명, 판임관인 전위(典尉) 1명이 증치되었다.

1904년 9월의 군제 개편 당시에는 시종부(侍從府), 배종부(陪從府)와 함께 친왕부에 부속된 무관이 신설되었으며, 1906년 11월에는 친왕 강독관을 친왕부의 관리로 임명하는 규정이 생기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황태자비궁은 조선이 황제국으로 국체를 변경함에 따라 새롭게 설치한 황실 관련 관서로서, 전통 시기와는 달리 명확하게 규정으로 명문화된 왕위 계승권자의 배우자 관련 업무 처리 부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산하 기구인 친왕부는 대한제국 황실의 한 축이었던 친왕들과 관련된 사무를 총괄하는 중요한 기관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단행본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0)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2, 3, 4, 5, 6, 7(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1)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8, 9(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2)

논문

이윤상,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한국문화』 40,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7)
신명호, 「일제하 이왕직과 이왕가 족보」(『한국학대학원논문집』 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대학원, 1996)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집필자
민회수(홍익대 교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