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보』는 1906년 6월 17일부터 1907년 6월 29일까지 총 293호가 발간된 일간신문인데, 이인직의 신소설『혈의 누』가 연재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신문의 1906년 8월 18일자(제 46호)부터 1907년 1월 1일자(제 156호)까지 총 110호에 걸쳐 매 호마다 매일 1수씩 총 111수를 1면 하단 끝부분에 ‘해동영언(海東永言)’이라는 제하에 연재하였는데, 본서는 이들 시조(음악적 형식은 ‘가곡창’) 작품들의 제명(題名)을 이른다.
누가 이것을 주도하고 집필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나와 있지 않으나, 대체로 ‘오세창(吳世昌), 이인직(李人稙), 최영년(崔永年), 신광희(申光熙)’ 등『만세보』의 발간을 주도했던 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해동영언’을 편집했으리라 추측된다.
‘해동영언(海東永言)’이라는 제하에 1수씩의 시조가 ‘제목, 음악적 표지, 작자 정보, 작품 텍스트, 단평’ 등의 순으로 실려 있는데, 그 기록 형식은 다음과 같다.
海東永言
羽調 初中大葉
錦南君 鄭忠信
黃河水맑다더니 聖人이 나시도다
草野群賢이 다니러 나단말가
어즈버 江山風月을 눌을 쥬고 잇거니
雲外子曰 千載에 一時로다
『해동영언』은 비록 한 작품씩 연재된 자료이긴 하지만, 연재된 자료를 하나로 합치면 기존 가집들의 체제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전체적으로 정연하다.
연재물 전체 제목인 ‘해동영언’은 ‘해동’과 ‘영언’의 합성어로 ‘해동가요’ 등 기존 가집과 같은 명명법(命名法)을 보여준다.
초중대엽(初中大葉), 이중대엽(二中大葉), 삼중대엽(三中大葉) 등 시조의 악조 표시 또한 기존 가집들에 나타나는 그것들과 같다.
작자의 경우도 이름만 밝힌 경우, 이름과 호를 밝힌 경우, 이름과 호에 관직명까지 밝힌 경우, 호 대신 생존시기나 신분을 밝힌 경우, 창작 경위를 함께 밝힌 경우 등 다양하여 일관성은 없으나, 이 또한 기존 가집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마지막 부분인 운외자(雲外子)의 단평은 다른 가집들에서 간혹 보이는 것처럼 작품의 특징적 양상을 포착하여 제시한 것으로 주관적인 인상비평이 주가 되긴 하나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다.
우조와 계면조 등 악조의 교체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19세기 가집의 체계에 가깝다. 그러나, 시조 연창의 실제를 반영하여 우조의 악곡들을 모두 부른 다음 계면조의 악곡들을 부르는 19세기 가집들과 달리, 악곡 하나하나를 우조와 계면조로 나누어 짝짓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해동영언』이 당대 시조 연창의 상황을 반영한 창본으로서가 아니라, 가사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둔 독서물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노래의 텍스트가 아니라 문학텍스트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