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이래, 상례 때 입었던 전통 상복의 윗옷.
연원
형태 및 용도
이외에 가령(加領), 겁(袷), 임(袵), 대하척(帶下尺) 등이 부착된다. 가령은 최의의 깃으로 활옷의 깃과 그 구성 형태가 유사하다. T자 모양이며 가운데를 접어 좌우 양쪽은 앞길의 좌우에 붙이고 뒷부분은 활중이라고 하는 사각형으로 파여진 목둘레의 뒷부분에 부착한다. 겁은 가령 속에 들어가는 속깃으로 가령과 활중의 크기가 같아 봉제하기 어려우므로 덧대는 것이다. 임(袵)은 제비꼬리 형상으로 양쪽 겨드랑이 밑에 부착되는데 최상의 벌어진 옆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대하척은 몸판의 길이가 짧아 몸판 아래 부착하는 것이다.
최의의 특징은 오복제도(五服制度)에 따라 차이가 있다. 참최에는 누이지 않은 매우 거친 생포(生布)를 쓰는데, 흉하고 칙칙한 빛깔이 참최복(斬衰服)을 입는 사람의 얼굴 역시 비통하여 그런 빛을 띠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최에는 모시풀[枲]처럼 의혹의 빛이 돌기에 그 다음으로 거친 시마(枲麻)를 사용한다. 대공은 애통하여 기쁜 빛이 없으므로 조금 거친 누인 베를 쓴다. 소공은 풀이 죽은 것 같기에 조금 고운 누인 베를 쓴다. 시마는 애통의 용모만 있으면 되므로 아주 고운 누인 베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양 역시 대공복(大功服) 이하의 최의에는 적, 부판, 벽령(辟領)을 부착하지 않는다. 솔기를 꿰매는 방법 역시 참최복의 최의는 솔기를 밖으로 내어 꿰매지만, 재최 이하의 최의는 솔기를 안으로 접어 꿰맨다. 이 최복의 길이는 109㎝, 화장은 80㎝이다. 눈물받이인 최(衰)는 부상(父喪)에 해당되어 왼쪽 가슴에 붙어 있고 크기는 가로가 12㎝, 세로가 17㎝이다. 지극한 애도를 등에 짊어진다는 의미를 지닌 부판은 뒷길에 부착되어야 하지만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솔기는 바느질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사례편람(四禮便覽)』
- 『증보사례편람(增補四禮便覽)』
논문
- 이영주, 『조선시대 국상 복제 연구』(동덕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조우현, 『조선시대 상복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 조우현·김혜경·동준희·박민재, 「『사례편람』에 기초한 남자 상복의 고증 제작에 관한 연구」(『복식』 66-8, 한국복식학회, 2016)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http://www.khs.go.kr)
- 국립민속박물관(https://www.nfm.go.kr)
- ‘영친왕 서거’(『대한뉴스』 제776호, 1970.05.09.)(http://www.ehistory.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011&mediadtl=6285)
기타 자료
- 『경향신문』(1970.05.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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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헌종 13년(1847)에 지은 전각. 후궁 김씨를 위해서 지었다 하며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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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1897~1970). 이름은 은(垠). 광무 4년(1900)에 영왕에 봉해지고 융희 1년(1907)에 황태자에 책립되었으나,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 황족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하였다. 1963년에 귀국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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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옷, 그릇, 기구 따위의 한 벌. 또는 그 전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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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육촌 형제의 아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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