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년(영조 42) 농학자(農學者) 유중림(柳重臨)이 쓴 농업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죽력고(竹瀝膏)는 대나무의 명산지인 전라도에서 만든 것이 유명하며 청죽을 쪼개어 불에 구어 나오는 진액과 꿀을 소주병에 넣어 중탕하여 생강을 넣는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1798년(정조 22)에 편찬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음식 관련 내용이 실린 「정조지(鼎俎志)」를 살펴보면, ‘죽력고방(竹瀝膏方)’이 나오는데, “죽력(竹瀝)과 백밀(白蜜) 적당량을 소주 안에 넣고 그릇째로 끓는 물에 넣은 뒤 중탕하고 꺼내어 쓴다. 혹은 생강즙을 넣어도 좋다.”고 하였다.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죽력과 꿀을 마음대로 소주병에 넣고 중탕하여 쓰는데, 생강즙을 넣어도 좋다. 죽력은 접제로 내여야 하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1946년 최남선(崔南善)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는 “조선 술 중에서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의 질문에 답으로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평양의 감홍로이며, 그 다음은 전주의 이강고(梨薑膏)이며, 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니, 청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낸 즙을 섞어서 만든 소주입니다.”라고 하였다. 전북 태인에 사는 송명섭은 죽력고를 잘 내려 2003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가 되었으며, 죽력고 내리는 법은 어머니 은계정에게 배웠고, 어머니는 친정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친정 할아버지 은재송은 전북 고부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치료 보조제로 죽력고를 빚었다고 한다.
죽력고를 만들기 위해 먼저 푸른 대를 물이 오를 때 추출하는 ‘죽력 내리기’ 작업을 한다. 푸른 대를 불에 구우면 진액이 나오므로 이것을 술에 넣어 만든다. 죽력은 대의 진액이므로 약간 끈끈하다. 담죽과 고죽을 한 자 남짓하게 잘라 시루에 올려놓고 중간을 지지면 댓속으로 수분이 나와 그 물이 양쪽으로 흐르게 된다. 죽력과는 별도로 생지황(生地黃), 계심(桂心), 석창포(石菖蒲), 꿀 등을 조제하고 이와 함께 누룩, 찹쌀 등을 넣어 술을 만들면 상당히 진한 액체가 된다. 죽력고는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정을 밟고 또 많은 약재가 들어가 있으므로 만들기가 힘든 술로 알려져 있다.
1849년(헌종 15) 홍석모(洪錫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한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3월 세시풍속에서 술 내용이 나오는데, “평안도 지방에서 쳐주는 술로는 감홍로(甘紅露)와 벽향주(碧香酒)가 있고, 호남 지방에서는 죽력고와 계당주(桂糖酒), 충청도 지방에는 노산춘(魯山春) 등을 각각 가장 좋은 술로 여기며 이것 역시 선물용으로 서울로 올라온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