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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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초상화.
강세황 초상 (姜世晃 肖像)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초상화.
강세황필 「도산서원도」는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문인화풍의 그림과, 그림을 제작한 내력을 기록한 제발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원근법의 적용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姜世晃筆 陶山書院圖)
강세황필 「도산서원도」는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문인화풍의 그림과, 그림을 제작한 내력을 기록한 제발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원근법의 적용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강세황 육십구세상(姜世晃 六十九歲像)은 1781년(정조 5) 도화서 화원 한종유가 그린 강세황의 69세 때 초상이다. 부채 위에 그린 초상화로, 강세황이 야복과 관모를 착용한 채 소나무 아래에 짚방석을 깔고 오른손에 책을 들고 앉은 모습이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 선면(扇面)에 제작된 것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점에서 「강세황 육십구세상」은 특이한 사례의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강세황 육십구세상 (姜世晃 六十九歲像)
강세황 육십구세상(姜世晃 六十九歲像)은 1781년(정조 5) 도화서 화원 한종유가 그린 강세황의 69세 때 초상이다. 부채 위에 그린 초상화로, 강세황이 야복과 관모를 착용한 채 소나무 아래에 짚방석을 깔고 오른손에 책을 들고 앉은 모습이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 선면(扇面)에 제작된 것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점에서 「강세황 육십구세상」은 특이한 사례의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강세황 유묵(姜世晃 遺墨)은 조선 후기, 강세황이 강심과 김행의 시를 쓴 서예 유묵이다. 강세황이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강덕룡의 부친과 관련한 시 두 편을 한 폭의 종이에 쓴 행서 작품이다. 강심과 김행의 시를 쓴 서예 작품으로 강세황이 말년에 쓴 완성도 높은 행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강세황 유묵 (姜世晃 遺墨)
강세황 유묵(姜世晃 遺墨)은 조선 후기, 강세황이 강심과 김행의 시를 쓴 서예 유묵이다. 강세황이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강덕룡의 부친과 관련한 시 두 편을 한 폭의 종이에 쓴 행서 작품이다. 강심과 김행의 시를 쓴 서예 작품으로 강세황이 말년에 쓴 완성도 높은 행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강주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문인이다. 인생 전반기는 관료로, 후반기는 시인으로 살았다. 당파적으로는 소북에 속했고, 중년에 관직에 있을 때 옥고를 치렀다. 그의 북인 당색 때문에 지속적인 관료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찍 관직에서 물러났기에 당대의 문학적 조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가 모두 기로소에 들어가는 등 가문이 번창했다.
강주 (姜籒)
강주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문인이다. 인생 전반기는 관료로, 후반기는 시인으로 살았다. 당파적으로는 소북에 속했고, 중년에 관직에 있을 때 옥고를 치렀다. 그의 북인 당색 때문에 지속적인 관료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찍 관직에서 물러났기에 당대의 문학적 조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가 모두 기로소에 들어가는 등 가문이 번창했다.
강진은 조선 후기 규장각검서관, 안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지는 강세황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았으며, 시에 뛰어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의 뒤를 이은 인물로 평가되었다. 특히 강진은 금강산을 세 차례나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강진 (姜溍)
강진은 조선 후기 규장각검서관, 안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지는 강세황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았으며, 시에 뛰어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의 뒤를 이은 인물로 평가되었다. 특히 강진은 금강산을 세 차례나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벽오청서도」는 조선 후기 화가 강세황이 그린 산수인물화이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17세기 초 중국에서 유입된 『개자원화전』 초집을 남종화법 산수화의 학습 교재로 인식하였다. 강세황의 「벽오청서도」도 『개자원화전』에 수록된 심주의 그림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개자원화전』 초집이 조선 후기 수묵담채화의 성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벽오청서도 (碧梧淸暑圖)
「벽오청서도」는 조선 후기 화가 강세황이 그린 산수인물화이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17세기 초 중국에서 유입된 『개자원화전』 초집을 남종화법 산수화의 학습 교재로 인식하였다. 강세황의 「벽오청서도」도 『개자원화전』에 수록된 심주의 그림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개자원화전』 초집이 조선 후기 수묵담채화의 성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에 「군선도」, 「서원아집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원이다. 하급 무반을 많이 배출한 중인 신분의 김해 김씨 출신이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았고, 10대 후반부터 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어진 도사 및 의궤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명실상부한 조선 후기 최고의 규장각 화원 화가로 활동했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모든 화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김홍도 (金弘道)
김홍도는 조선 후기에 「군선도」, 「서원아집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원이다. 하급 무반을 많이 배출한 중인 신분의 김해 김씨 출신이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았고, 10대 후반부터 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어진 도사 및 의궤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명실상부한 조선 후기 최고의 규장각 화원 화가로 활동했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모든 화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재건된 사찰건물. 불전.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재건된 사찰건물. 불전.
심사정은 조선 후기 산수화, 도석인물화, 화훼영모화, 풍속화 등을 그린 화가이다. 청송 심씨 명문가 후손이었으나, 할아버지 심익창이 연잉군 시해 미수 사건에 가담하여 고문사하면서 집안이 몰락했다. 평생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산수화뿐만 아니라, 도석인물화, 화조영모화, 풍속화 등을 다작했다. 특히 당시 유입된 중국 화보를 참조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강상야박도」, 「촉잔도권」이 있다.
심사정 (沈師正)
심사정은 조선 후기 산수화, 도석인물화, 화훼영모화, 풍속화 등을 그린 화가이다. 청송 심씨 명문가 후손이었으나, 할아버지 심익창이 연잉군 시해 미수 사건에 가담하여 고문사하면서 집안이 몰락했다. 평생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산수화뿐만 아니라, 도석인물화, 화조영모화, 풍속화 등을 다작했다. 특히 당시 유입된 중국 화보를 참조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강상야박도」, 「촉잔도권」이 있다.
최북은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이다. 문인과 교유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했으며, 안산 문인들의 후원 아래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남종화법을 완성했다.
최북 (崔北)
최북은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이다. 문인과 교유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했으며, 안산 문인들의 후원 아래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남종화법을 완성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 강세황의 시·기·서(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표암유고 (豹菴遺稿)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 강세황의 시·기·서(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조선후기 『칠분전신첩』의 등을 그린 화가.
임희수 (任希壽)
조선후기 『칠분전신첩』의 등을 그린 화가.
자화상은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이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 고흐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흥미 있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 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에서 김시습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18세기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 밖에 이광좌, 강세황의 자화상도 심미적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이다.
자화상 (自畵像)
자화상은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이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 고흐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흥미 있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 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에서 김시습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18세기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 밖에 이광좌, 강세황의 자화상도 심미적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이다.
강노 초상(姜㳣 肖像)은 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강세황의 증손으로 고종 대에 좌의정에까지 오른 강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데, 고종 대에 제작된 몇 안 되는 고위 관료의 초상화라는 점과 반신상(半身像)이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 2017년 미국 경매시장에 나온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구매하여 국내에 들여왔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강노 초상 (姜㳣 肖像)
강노 초상(姜㳣 肖像)은 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강노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강세황의 증손으로 고종 대에 좌의정에까지 오른 강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데, 고종 대에 제작된 몇 안 되는 고위 관료의 초상화라는 점과 반신상(半身像)이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 2017년 미국 경매시장에 나온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구매하여 국내에 들여왔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는 조선 후기, 화원 김홍도가 바닷가 여인들의 생활 모습을 그린 풍속도이다. '매해파행'이란 ‘젓갈을 파는 할미’라는 뜻으로, 붉은 해가 막 떠오르고 있는 푸른 빛이 감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젓갈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노파와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金弘道 筆 賣醢婆行圖)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는 조선 후기, 화원 김홍도가 바닷가 여인들의 생활 모습을 그린 풍속도이다. '매해파행'이란 ‘젓갈을 파는 할미’라는 뜻으로, 붉은 해가 막 떠오르고 있는 푸른 빛이 감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젓갈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노파와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발견된 홍정명(洪廷命, 1692~1748)의 지석이다. 홍정명이 죽은 후,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외손 이득신이 찬하고 강세황이 글을 썼다. 찬자와 서자(書者),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2004년 7월 9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두 4매 8면으로 된 이 지석은 개인의 자취에 대한 많은 사실을 전하고 있어 문집이 없는 인물의 전기를 복원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이다. 서자(書者)가 당대 시서화의 대가였던 표암 강세황이라는 데서 서예사와 금석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홍정명 지석 (洪廷命 誌石)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발견된 홍정명(洪廷命, 1692~1748)의 지석이다. 홍정명이 죽은 후,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외손 이득신이 찬하고 강세황이 글을 썼다. 찬자와 서자(書者),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2004년 7월 9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두 4매 8면으로 된 이 지석은 개인의 자취에 대한 많은 사실을 전하고 있어 문집이 없는 인물의 전기를 복원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이다. 서자(書者)가 당대 시서화의 대가였던 표암 강세황이라는 데서 서예사와 금석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칠태부인경수연도」는 1691년 음력 8월에 관료 7명이 70세 이상 된 모친들을 모시고 경수연을 치른 뒤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조선시대 기록화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63.5㎝, 가로 688.3㎝이다. 일곱 명의 태부인과 그들의 가족 명단, 병조판서 민종도의 감사글, 강세황이 1745년(영조 21) 쓴 서문 등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참석자의 신분으로 구별된 세 군데의 연석을 나란히 묘사한 단순한 구도의 그림이다. 후대의 모사본이지만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여 17세기 말 기록화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칠태부인경수연도 (七太夫人慶壽宴圖)
「칠태부인경수연도」는 1691년 음력 8월에 관료 7명이 70세 이상 된 모친들을 모시고 경수연을 치른 뒤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조선시대 기록화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63.5㎝, 가로 688.3㎝이다. 일곱 명의 태부인과 그들의 가족 명단, 병조판서 민종도의 감사글, 강세황이 1745년(영조 21) 쓴 서문 등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참석자의 신분으로 구별된 세 군데의 연석을 나란히 묘사한 단순한 구도의 그림이다. 후대의 모사본이지만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여 17세기 말 기록화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이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심사정 필 산승보납도 (沈師正 筆 山僧補衲圖)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이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