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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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백련사결사 (白蓮寺結社)
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통 시대에 여러 가지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체.
향도 (香徒)
전통 시대에 여러 가지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체.
『권수정혜결사문』은 지눌(知訥, 1158-1210)이 1190년(명종 20)에 정혜결사의 결성 배경과 결사의 사상적 방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수행자들에게 결사의 참여를 권유한 글이다. 지눌은 1188년(명종 18)에 팔공산 거조사에서 동료들과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닦는 정혜결사를 결성하였는데, 참여자가 많아지자 결사의 근거지를 순천 송광사로 옮기고 결사의 이름을 수선결사(修禪結社)로 바꾸었다. 이 글은 정혜결사 및 이를 계승한 수선사의 사상적 입장을 알 수 있는 기본 자료이다.
권수정혜결사문 (勸修定慧結社文)
『권수정혜결사문』은 지눌(知訥, 1158-1210)이 1190년(명종 20)에 정혜결사의 결성 배경과 결사의 사상적 방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수행자들에게 결사의 참여를 권유한 글이다. 지눌은 1188년(명종 18)에 팔공산 거조사에서 동료들과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닦는 정혜결사를 결성하였는데, 참여자가 많아지자 결사의 근거지를 순천 송광사로 옮기고 결사의 이름을 수선결사(修禪結社)로 바꾸었다. 이 글은 정혜결사 및 이를 계승한 수선사의 사상적 입장을 알 수 있는 기본 자료이다.
대동청년단은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년 10월 경상도 지역의 개신(改新) 유학자와 근대적 교육을 받은 청년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권 회복 운동 단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및 독립운동의 연락 기지 및 자금 지원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동청년단 (大東靑年團)
대동청년단은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년 10월 경상도 지역의 개신(改新) 유학자와 근대적 교육을 받은 청년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권 회복 운동 단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및 독립운동의 연락 기지 및 자금 지원 역할을 담당하였다.
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강주(康州)에 살던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있던 여종이다. 그는 매일 저녁 일을 마친 뒤에 만일염불결사가 진행되던 미타사에 가서 염불 수행을 하였다. 어느날 하늘의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부터 들려오더니 욱면이 지붕 들보를 뚫고 솟아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몸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욱면 (郁面)
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강주(康州)에 살던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있던 여종이다. 그는 매일 저녁 일을 마친 뒤에 만일염불결사가 진행되던 미타사에 가서 염불 수행을 하였다. 어느날 하늘의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부터 들려오더니 욱면이 지붕 들보를 뚫고 솟아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몸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제에 의한 신사참배 및 전승기원예배 등을 거부한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신석구 (申錫九)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제에 의한 신사참배 및 전승기원예배 등을 거부한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1941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학생비밀결사.
다혁당 (茶革黨)
1941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학생비밀결사.
1920년 재만독립운동단체인 광복군 총영의 국내특파결사대원 정인복(鄭仁福)이 황해도겸이포의 미쓰비시 제철소(三菱製鐵所)를 폭파한 의거.
겸이포제철소 폭파 의거 (兼二浦製鐵所 爆破 義擧)
1920년 재만독립운동단체인 광복군 총영의 국내특파결사대원 정인복(鄭仁福)이 황해도겸이포의 미쓰비시 제철소(三菱製鐵所)를 폭파한 의거.
이종욱은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이사장, 조선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법호는 지암이며 히로타 쇼우이쿠라고도 불렀다. 1884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하였다. . 1896년 출가하여 3·1운동 때 탑골공원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1940년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조선불교총본산설립위원회 부회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조계종 설립을 주도했으며 각종 시국 집회에 불교계 대표로 참석했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강원도 대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무부장, 강원도 교구원장과 오대산 임업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종욱 (李鍾郁)
이종욱은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이사장, 조선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법호는 지암이며 히로타 쇼우이쿠라고도 불렀다. 1884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하였다. . 1896년 출가하여 3·1운동 때 탑골공원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1940년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조선불교총본산설립위원회 부회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조계종 설립을 주도했으며 각종 시국 집회에 불교계 대표로 참석했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강원도 대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무부장, 강원도 교구원장과 오대산 임업사 사장을 역임했다.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은 백파긍선(白坡亘璇)이 1822년에 선(禪)을 닦는 방식을 19장으로 구성하여 저술한 것으로, 선리(禪理) 참구를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결사 정신에 바탕한 것이다. 백파가 1852년에 입적한 후 8년이 지난 1860년에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경기도 양주 천마산 봉인사(奉印寺)에서 긍선의 제자인 혜암보혜(慧庵普惠)에 의해 간행되었다.
수선결사문 (修禪結社文)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은 백파긍선(白坡亘璇)이 1822년에 선(禪)을 닦는 방식을 19장으로 구성하여 저술한 것으로, 선리(禪理) 참구를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결사 정신에 바탕한 것이다. 백파가 1852년에 입적한 후 8년이 지난 1860년에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경기도 양주 천마산 봉인사(奉印寺)에서 긍선의 제자인 혜암보혜(慧庵普惠)에 의해 간행되었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發願文).
봉위헌강대왕결화엄경사원문 (奉爲獻康大王結華嚴經社願文)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發願文).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대동청년당 (大東靑年黨)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염불결사(念佛結社)는 염불로 왕생을 구하려는 뜻을 가진 도반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여산의 혜원이 백련사를 결성하고 염불결사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발징이 미타만일회를 결성하여 염불결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진억이 오대산에서 수정결사를 하였으며, 지눌은 수선사에서 정혜쌍수 염불수행을 하는 수선결사를 결성하였다. 또한 천태종의 요세는 백련사에서 법화삼매참회와 정토왕생을 구하는 백련결사를 하였다. 이러한 결사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만일염불회로 계승되었다.
염불결사 (念佛結社)
염불결사(念佛結社)는 염불로 왕생을 구하려는 뜻을 가진 도반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여산의 혜원이 백련사를 결성하고 염불결사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발징이 미타만일회를 결성하여 염불결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진억이 오대산에서 수정결사를 하였으며, 지눌은 수선사에서 정혜쌍수 염불수행을 하는 수선결사를 결성하였다. 또한 천태종의 요세는 백련사에서 법화삼매참회와 정토왕생을 구하는 백련결사를 하였다. 이러한 결사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만일염불회로 계승되었다.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백청단 (白靑團)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혈복단(血復團)은 1919년 11월 서울에서 조직되어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한 비밀결사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金泰源)이 조직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혈복단의 주요 활동은 이득수(李得壽)와 박선태(朴善泰)가 조직한 경기도 수원지부에서 이루어졌다.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가입을 추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혈복단 (血復團)
혈복단(血復團)은 1919년 11월 서울에서 조직되어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한 비밀결사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金泰源)이 조직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혈복단의 주요 활동은 이득수(李得壽)와 박선태(朴善泰)가 조직한 경기도 수원지부에서 이루어졌다.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가입을 추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월산(月山)은 해방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한국종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50~1960년대 불교정화운동 당시 실무진으로 활동했으며, 법주사, 신흥사, 동화사, 불국사 등 국내 중요 사찰의 주지를 역임했다. 두 차례의 총무원장, 원로회 의장을 지내는 등 조계종 종단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월산 (月山)
월산(月山)은 해방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한국종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50~1960년대 불교정화운동 당시 실무진으로 활동했으며, 법주사, 신흥사, 동화사, 불국사 등 국내 중요 사찰의 주지를 역임했다. 두 차례의 총무원장, 원로회 의장을 지내는 등 조계종 종단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 총감으로 활약하며 군자금 전달, 밀정 보고, 독립운동기관 설치 등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상호 (李相鎬)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 총감으로 활약하며 군자금 전달, 밀정 보고, 독립운동기관 설치 등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당나라 종밀이 선정을 닦으면서 지혜도 균등하게 한다고 주창한 불교교리.
습정균혜 (習定均慧)
당나라 종밀이 선정을 닦으면서 지혜도 균등하게 한다고 주창한 불교교리.
개경(현재 개성)에 있었던 고려시대 법화결사가 행해진 사찰. 법화결사도량.
개성 보암사 (開城 寶巖社)
개경(현재 개성)에 있었던 고려시대 법화결사가 행해진 사찰. 법화결사도량.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쓴 의상(義湘)의 기일원문(忌日願文).
해동부석존자의상휘일문 (海東浮石尊者義湘諱日文)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쓴 의상(義湘)의 기일원문(忌日願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