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광무"
검색결과 총 16건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양전사업은 1899년부터 1903년까지 대한제국 정부가 실시한 근대적 토지조사사업이다. 광무양전은 고종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업이었다. 1898년 의정부는 양전 사업을 두고 논쟁하였으나 회의 참석 인원 10명 중 6명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그런데 고종이 이례적으로 ‘청의대로 시행할 것’이라는 비답을 내림으로써 양전 시행이 전격 결정되었다. 비답에 이어 고종은 7월 2일에 양전 담당 아문과 그 처무규정을 마련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이에 따라 1898년 7월 6일 양지아문(量地衙門)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광무양전사업 (光武量田事業)
광무양전사업은 1899년부터 1903년까지 대한제국 정부가 실시한 근대적 토지조사사업이다. 광무양전은 고종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업이었다. 1898년 의정부는 양전 사업을 두고 논쟁하였으나 회의 참석 인원 10명 중 6명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그런데 고종이 이례적으로 ‘청의대로 시행할 것’이라는 비답을 내림으로써 양전 시행이 전격 결정되었다. 비답에 이어 고종은 7월 2일에 양전 담당 아문과 그 처무규정을 마련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이에 따라 1898년 7월 6일 양지아문(量地衙門)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대한흥학회 (大韓興學會)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김선두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서 평양 장로교계 3·1운동을 주동했던 목사이다. 1938년 8월경에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 참배 결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까지 건너가 활동했으나, 일제 경찰의 사전 검속으로 무산되었다.
김선두 (金善斗)
김선두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서 평양 장로교계 3·1운동을 주동했던 목사이다. 1938년 8월경에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 참배 결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까지 건너가 활동했으나, 일제 경찰의 사전 검속으로 무산되었다.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궁내부 (宮內府)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신천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신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19세기 초반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9세기 후반에 달라진 정보를 새롭게 제공하고 있는 읍지로서, 당대 신천 지역의 사회경제적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신천군읍지 (信川郡邑誌)
『신천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신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19세기 초반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9세기 후반에 달라진 정보를 새롭게 제공하고 있는 읍지로서, 당대 신천 지역의 사회경제적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서흥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서흥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3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서흥군의 채색 지도를 실었다. 1828년 서흥부사 신상현이 편찬해 놓았던 읍지를 다시 정리한 것으로, 당시의 서흥 지역 현황을 수록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서흥 지방의 읍지 중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흥군읍지 (瑞興郡邑誌)
『서흥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서흥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3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서흥군의 채색 지도를 실었다. 1828년 서흥부사 신상현이 편찬해 놓았던 읍지를 다시 정리한 것으로, 당시의 서흥 지역 현황을 수록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서흥 지방의 읍지 중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가사.
인산가 (因山歌)
19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가사.
『송화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송화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5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송화군의 흑백 지도 1장을 실었다. 분량이 적고 항목 구성도 상당히 소략하다. 정치적, 문화적 항목과 경제적 항목, 그리고 군사적 항목이 빠져 있는 등 일반 읍지들이 담고 있는 핵심 정보가 없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상황을 수록하는 등 조선 후기 송화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보여 주기도 한다.
송화군읍지 (松禾郡邑誌)
『송화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송화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5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송화군의 흑백 지도 1장을 실었다. 분량이 적고 항목 구성도 상당히 소략하다. 정치적, 문화적 항목과 경제적 항목, 그리고 군사적 항목이 빠져 있는 등 일반 읍지들이 담고 있는 핵심 정보가 없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상황을 수록하는 등 조선 후기 송화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보여 주기도 한다.
개항기 문신·학자 오횡묵이 1897년 강원도 정선군수로 재임하는 동안에 작성한 일지. 일기.
정선총쇄록 (旌善叢鎖錄)
개항기 문신·학자 오횡묵이 1897년 강원도 정선군수로 재임하는 동안에 작성한 일지. 일기.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황제 (皇帝)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호구는 국가가 주민을 가족 단위로 파악할 때의 가족과 그 구성원의 수이다. 동아시아의 왕조국가는 주민의 가족과 구성원을 ‘호’와 ‘구’로 파악하여 통치하고자 하였다. 조선은 『경국대전』에 기재된 양식으로 3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호구를 조사하여 호적대장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호 대표자 부부와 자녀에 더해 노비 및 고공을 호의 구성원으로 기재되었는데, 특히 신분적 연원을 확인하기 위해 ‘부, 조, 증조와 외조’를 기재하였다. 이렇게 호구 총수를 파악하여 재정 및 군역, 호역을 할당하거나 부담을 조정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호구 (戶口)
호구는 국가가 주민을 가족 단위로 파악할 때의 가족과 그 구성원의 수이다. 동아시아의 왕조국가는 주민의 가족과 구성원을 ‘호’와 ‘구’로 파악하여 통치하고자 하였다. 조선은 『경국대전』에 기재된 양식으로 3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호구를 조사하여 호적대장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호 대표자 부부와 자녀에 더해 노비 및 고공을 호의 구성원으로 기재되었는데, 특히 신분적 연원을 확인하기 위해 ‘부, 조, 증조와 외조’를 기재하였다. 이렇게 호구 총수를 파악하여 재정 및 군역, 호역을 할당하거나 부담을 조정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군인양성운동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미주지역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군인을 양성하여 원동 지역으로 보내고자 한 군사운동이다. 1908년 해외한인 대표들이 참가한 애국동지대표회에서 군사훈련 설립안이 통과되었고, 박용만이 주도하여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였다. 멕시코의 메리다 지방에서는 광무군인 출신자를 중심으로 이근영이 사관 양성 기관인 숭무학교를 창설하여 생도를 배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인청년들은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한인소년병학교로 몰려 들었고, 졸업생들은 각지에서 독립군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군인양성운동 (軍人養成運動)
군인양성운동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미주지역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군인을 양성하여 원동 지역으로 보내고자 한 군사운동이다. 1908년 해외한인 대표들이 참가한 애국동지대표회에서 군사훈련 설립안이 통과되었고, 박용만이 주도하여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였다. 멕시코의 메리다 지방에서는 광무군인 출신자를 중심으로 이근영이 사관 양성 기관인 숭무학교를 창설하여 생도를 배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인청년들은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한인소년병학교로 몰려 들었고, 졸업생들은 각지에서 독립군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홍천군읍지』는 1899년 이낙응이 강원도 홍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4장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군수 및 승총질 액수 등 갑오개혁 이후의 정보를 알 수 있어, 19세기 말 홍천군의 사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홍천군읍지 (洪川郡邑誌)
『홍천군읍지』는 1899년 이낙응이 강원도 홍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4장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군수 및 승총질 액수 등 갑오개혁 이후의 정보를 알 수 있어, 19세기 말 홍천군의 사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
명시력 (明時曆)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