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교육회"
검색결과 총 17건
1920년대 초 우리의 손으로 대학을 설립하고자 일어난 일제하의 문화 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民立大學設立運動)
1920년대 초 우리의 손으로 대학을 설립하고자 일어난 일제하의 문화 운동.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교남학회 (嶠南學會)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일본 교토[京都]시 히가시야마구[東山區]에 있는 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
교토국제학교 (京都國際學校)
일본 교토[京都]시 히가시야마구[東山區]에 있는 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
1907년 동아개진교육회(東亞開進敎育會)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설립하였던 중등교육기관.
동명학교 (東明學校)
1907년 동아개진교육회(東亞開進敎育會)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설립하였던 중등교육기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초·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
오사카금강학교 (大阪金剛學校)
일본 오사카에 있는 초·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
1908년 8월 25일 한성에서 개교한 여자교육기관이다. 1907년 봄에 한성에 설립된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의 운영이 3,000여원의 부채로 부실해짐에 따라 여자보학원 원장이던 강윤희(姜玧熙) 등 일단의 부인들과 유지자들이 새로운 여학교 양원여학교(養源女學校)를 설립하였다. 첫 입학자는 40여 명이고, 교사로는 신상민(경신학교 졸업자)의 부인인 신완전(申完殿)을 초빙하였다. 1909년 7월에 특별과를 개설하고, 15세 이상 30세 이하의 부녀자들을 모집하여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영어·일어·산술·국문·한문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양원여학교 (養原女學校)
1908년 8월 25일 한성에서 개교한 여자교육기관이다. 1907년 봄에 한성에 설립된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의 운영이 3,000여원의 부채로 부실해짐에 따라 여자보학원 원장이던 강윤희(姜玧熙) 등 일단의 부인들과 유지자들이 새로운 여학교 양원여학교(養源女學校)를 설립하였다. 첫 입학자는 40여 명이고, 교사로는 신상민(경신학교 졸업자)의 부인인 신완전(申完殿)을 초빙하였다. 1909년 7월에 특별과를 개설하고, 15세 이상 30세 이하의 부녀자들을 모집하여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영어·일어·산술·국문·한문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해방 이후 『한국의 지질』을 저술한 학자. 지질학자.
이대성 (李大聲)
해방 이후 『한국의 지질』을 저술한 학자. 지질학자.
1908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사립전문학교.
융희법률학교 (隆熙法律學校)
1908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사립전문학교.
1907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여자교육기관.
여자보학원 (女子普學院)
1907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여자교육기관.
대한제국기 때, 대한제국군 육군 참위, 독립의군부 사령관, 신흥무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의병장·관료·교육자·독립운동가.
이세영 (李世永)
대한제국기 때, 대한제국군 육군 참위, 독립의군부 사령관, 신흥무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의병장·관료·교육자·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평정관, 교통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손진형 (孫晉衡)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평정관, 교통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한족회 (韓族會)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독어독문학과 독어교육연구를 위하여 설립된 학술단체.
한국독일어교육학회 (韓國獨逸語敎育學會)
독어독문학과 독어교육연구를 위하여 설립된 학술단체.
1925년에,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교육회에서 식민 교육 보급을 위해 일본어로 발행한 교육 잡지.
문교의 조선 (文敎의 朝鮮)
1925년에,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교육회에서 식민 교육 보급을 위해 일본어로 발행한 교육 잡지.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897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공립소학교 · 관립소학교 · 한성사범학교 · 융희학교에서 교원 · 물리 교관 ·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시천교에 입문하여 종교인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사망하였다. 1909년 4월 『교남교육회잡지(嶠南敎育會雜誌)』 제1권 제1호가 발행될 당시에 편집 겸 발행을 맡았다. 이 시기에 흥사단(興士團)에도 가입하여 교과서 개발에 관여하였다.
박정동 (朴晶東)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897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공립소학교 · 관립소학교 · 한성사범학교 · 융희학교에서 교원 · 물리 교관 ·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시천교에 입문하여 종교인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사망하였다. 1909년 4월 『교남교육회잡지(嶠南敎育會雜誌)』 제1권 제1호가 발행될 당시에 편집 겸 발행을 맡았다. 이 시기에 흥사단(興士團)에도 가입하여 교과서 개발에 관여하였다.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대동청년당 (大東靑年黨)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김사용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교남학우회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면서 1920년 '폭탄밀조사건', 1923년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의 거사 계획 사건으로 체포된 독립유공자이다.
김사용 (金思容)
김사용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교남학우회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면서 1920년 '폭탄밀조사건', 1923년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의 거사 계획 사건으로 체포된 독립유공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