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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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도감의궤』는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국장에 관한 제반 의식과 절차 및 물력 등을 기록한 의궤이다. 다양한 관청과 인력이 참여해 부묘 및 장례에 필요한 문서와 물품을 정리하고 기록·도설화한 문헌이다. 구성은 좌목, 계사, 장계, 품목, 예관 등의 문서류와 일방·이방·삼방·분장흥고 등 각 부서의 제작·운영 기록, 그리고 발인반차도·길의장·흉의장 등 장례 의물에 관한 도설을 포함한다. 이는 국왕 장례의 정치사회·문화적 의미와 조선의 예학, 의례, 물질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국장도감의궤 (國葬都監儀軌)
『국장도감의궤』는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국장에 관한 제반 의식과 절차 및 물력 등을 기록한 의궤이다. 다양한 관청과 인력이 참여해 부묘 및 장례에 필요한 문서와 물품을 정리하고 기록·도설화한 문헌이다. 구성은 좌목, 계사, 장계, 품목, 예관 등의 문서류와 일방·이방·삼방·분장흥고 등 각 부서의 제작·운영 기록, 그리고 발인반차도·길의장·흉의장 등 장례 의물에 관한 도설을 포함한다. 이는 국왕 장례의 정치사회·문화적 의미와 조선의 예학, 의례, 물질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덕수궁국장화첩』은 1919년 경성일보사가 고종의 국장 과정을 찍은 사진 등을 엮어 발행한 사진첩이다. 조선 제26대 왕으로 1919년 정월에 사망한 고종의 장례식 모습을 담은 이 사진첩에는 총 49장의 사진이 수록되었으며 고종의 생전 모습과 국장 의전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고종 황제의 붕어 소식을 보도한 1919년 1월 22일 자 『매일신보』의 호외를 수록하고 있다.
덕수궁국장화첩 (德壽宮國葬畵帖)
『덕수궁국장화첩』은 1919년 경성일보사가 고종의 국장 과정을 찍은 사진 등을 엮어 발행한 사진첩이다. 조선 제26대 왕으로 1919년 정월에 사망한 고종의 장례식 모습을 담은 이 사진첩에는 총 49장의 사진이 수록되었으며 고종의 생전 모습과 국장 의전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고종 황제의 붕어 소식을 보도한 1919년 1월 22일 자 『매일신보』의 호외를 수록하고 있다.
『이태왕국장의사진첩 부 조선장렬』은 1919년 고종의 국장 과정을 담고 있는 사진첩이다. 1919년 1월 22일 승하한 고종의 3월 3일 국장 과정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 산하의 궁내청 ‘서릉부 도서료문고 궁내공문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09년 한미사진미술관이 일본인 개인 소장가에게서 입수, 공개하였다. 사진첩 뒷면 서지 정보에 조선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에게 헌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태왕국장의사진첩 부 조선장열 (李太王國葬儀寫眞帖 附 朝鮮葬列)
『이태왕국장의사진첩 부 조선장렬』은 1919년 고종의 국장 과정을 담고 있는 사진첩이다. 1919년 1월 22일 승하한 고종의 3월 3일 국장 과정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 산하의 궁내청 ‘서릉부 도서료문고 궁내공문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09년 한미사진미술관이 일본인 개인 소장가에게서 입수, 공개하였다. 사진첩 뒷면 서지 정보에 조선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에게 헌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순종국장기념사진첩』은 1926년 순종의 국장을 촬영하여 경성사진통신사에서 발행한 사진첩이다. 국장의 준비 과정부터 영결식까지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첩에는 속표지 및 목차에 순종 일대기, 선원도, 국장일기가 부기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조선보, 순종어연보, 순종어일대기, 궁중일화, 인산일기 등이 실려 있다. 한국 근대사와 식민지 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순종국장기념사진첩 (純宗國葬紀念寫眞帖)
『순종국장기념사진첩』은 1926년 순종의 국장을 촬영하여 경성사진통신사에서 발행한 사진첩이다. 국장의 준비 과정부터 영결식까지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첩에는 속표지 및 목차에 순종 일대기, 선원도, 국장일기가 부기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조선보, 순종어연보, 순종어일대기, 궁중일화, 인산일기 등이 실려 있다. 한국 근대사와 식민지 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갑오개혁 이후 내무행정을 관장하던 관청.
내부 (內部)
갑오개혁 이후 내무행정을 관장하던 관청.
1895년(고종 32) 4월에 설치된 법무 행정을 관장하던 관청.
법부 (法部)
1895년(고종 32) 4월에 설치된 법무 행정을 관장하던 관청.
조선 후기의 문인, 김홍규의 시·제문·서(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멱타집 (覓佗集)
조선 후기의 문인, 김홍규의 시·제문·서(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부묘도감의궤』는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국장에서 3년의 상기를 마친 후 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 봉안하는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궤청이 중심이 되어 관련 문서, 물품, 절차를 정리하고 그림을 포함해 제작하였다. 도청·일방·이방·삼방 등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제작 및 행정 업무를 담당했으며, 종묘 제례의 핵심인 제기, 제물, 의절, 인력 배치 등이 상세히 수록되었다. 반차도와 관원 명단까지 포함된 이 의궤는 조선의 유교적 왕실 의례의 전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부묘도감의궤 (祔廟都監儀軌)
『부묘도감의궤』는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국장에서 3년의 상기를 마친 후 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 봉안하는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궤청이 중심이 되어 관련 문서, 물품, 절차를 정리하고 그림을 포함해 제작하였다. 도청·일방·이방·삼방 등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제작 및 행정 업무를 담당했으며, 종묘 제례의 핵심인 제기, 제물, 의절, 인력 배치 등이 상세히 수록되었다. 반차도와 관원 명단까지 포함된 이 의궤는 조선의 유교적 왕실 의례의 전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안국장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8년에 간행한 시문집.
은계유집 (殷溪遺集)
조선 후기의 학자, 안국장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8년에 간행한 시문집.
충숙왕은 1313년~1330년과 1332년~1339년에 재위한 고려 제27대 왕이다. 1313년(충선왕 5) 충선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충선왕의 영향력 아래에서 정치 일선에 나서지 못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실각한 후 정치 세력 개혁을 도모하였으나 충선왕 지지 세력이 일으킨 심왕옹립운동 및 입성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원에 억류되었다. 1330년(충숙왕 17)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가 1332년(충숙왕 복위1) 복위하였다.
충숙왕 (忠肅王)
충숙왕은 1313년~1330년과 1332년~1339년에 재위한 고려 제27대 왕이다. 1313년(충선왕 5) 충선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충선왕의 영향력 아래에서 정치 일선에 나서지 못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실각한 후 정치 세력 개혁을 도모하였으나 충선왕 지지 세력이 일으킨 심왕옹립운동 및 입성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원에 억류되었다. 1330년(충숙왕 17)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가 1332년(충숙왕 복위1) 복위하였다.
조선 말기 통리아문(統理衙門)·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관직.
참의 (參議)
조선 말기 통리아문(統理衙門)·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관직.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조명록 (趙明綠)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1957년 이래 각 동 단위로 조직된 관변 자치조직.
국민반 (國民班)
1957년 이래 각 동 단위로 조직된 관변 자치조직.
윤우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등을 역임한 경찰 관료이다. 1900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송화경찰서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도 경찰 간부를 두루 지내다가 정부 수립 후 서울시 경찰국 경무과장을 역임하였다. 1949년 헌병 대위로 특별임관되었다가 1951년 서울시경찰국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내무부 치안국장을 거쳐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서 부정축재 혐의로 처벌받았다.
윤우경 (尹宇景)
윤우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등을 역임한 경찰 관료이다. 1900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송화경찰서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도 경찰 간부를 두루 지내다가 정부 수립 후 서울시 경찰국 경무과장을 역임하였다. 1949년 헌병 대위로 특별임관되었다가 1951년 서울시경찰국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내무부 치안국장을 거쳐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서 부정축재 혐의로 처벌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