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군부"
검색결과 총 16건
대한제국기 때, 대한제국군 육군 참위, 독립의군부 사령관, 신흥무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의병장·관료·교육자·독립운동가.
이세영 (李世永)
대한제국기 때, 대한제국군 육군 참위, 독립의군부 사령관, 신흥무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의병장·관료·교육자·독립운동가.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위호(位號).
부마도위 (駙馬都尉)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위호(位號).
조선시대, 공주·옹주·군주·현주 등과 혼인한 부마의 관서이다. 부마는 조선 초기에는 공신과 함께 이성제군부에 소속되었다. 부마의 처우는 태종, 세종 대를 거치면서 정리되었고 특히 세종 때에 부마를 의빈이라 칭하고 부마의 과전도 정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봉군을 종친에게만 적용하고자 하여 부마의 봉군법을 폐지하였다. 의빈에게 산관을 제수하며 이성제군부를 부마부로 개칭하고 관서의 서무를 관장할 관원을 두었다. 그후 부마부는 세조가 관제 개정을 할 때에 의빈부로 개칭되어 1894년 종정부에 합병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의빈부 (儀賓府)
조선시대, 공주·옹주·군주·현주 등과 혼인한 부마의 관서이다. 부마는 조선 초기에는 공신과 함께 이성제군부에 소속되었다. 부마의 처우는 태종, 세종 대를 거치면서 정리되었고 특히 세종 때에 부마를 의빈이라 칭하고 부마의 과전도 정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봉군을 종친에게만 적용하고자 하여 부마의 봉군법을 폐지하였다. 의빈에게 산관을 제수하며 이성제군부를 부마부로 개칭하고 관서의 서무를 관장할 관원을 두었다. 그후 부마부는 세조가 관제 개정을 할 때에 의빈부로 개칭되어 1894년 종정부에 합병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근장상장군 (近仗上將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 군비총단 경호부장, 고려혁명군 남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임병극 (林炳極)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 군비총단 경호부장, 고려혁명군 남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윤척 (尹陟)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 중 응양군(鷹揚軍)의 최고지휘관인 상장군(上將軍)을 가리키는 명칭.
반주 (班主)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 중 응양군(鷹揚軍)의 최고지휘관인 상장군(上將軍)을 가리키는 명칭.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의 주관으로 성달생의 정서본을 판각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묘법연화경 권5~7 (妙法蓮華經 卷五~七)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의 주관으로 성달생의 정서본을 판각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1386년 『묘법연화경』 권7을 감색 종이에 은니로 필사한 불교경전.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7 (紺紙銀泥 妙法蓮華經 卷七)
1386년 『묘법연화경』 권7을 감색 종이에 은니로 필사한 불교경전.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이 주관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묘법연화경 권4~7 (妙法蓮華經 卷四~七)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이 주관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1908년 황태자를 위하여 설치한 관서.
동궁무관부 (東宮武官府)
1908년 황태자를 위하여 설치한 관서.
근대 개항기 설치된 군사에 관한 일을 담당한 중앙행정부서.
군무아문 (軍務衙門)
근대 개항기 설치된 군사에 관한 일을 담당한 중앙행정부서.
순군부는 고려 전기의 군사기구이다. 군사 업무를 담당하던 병부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군부가 설치되어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것은 많은 사병을 거느린 호족들이 발호하던 시대적인 상황에 기인하였다. 순군부는 병부보다 상위의 정치 조직이었으며, 경종 때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성종 때 군사제도가 2군 6위로 정착되면서 순군부의 역할이 약화하여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순군부 (徇軍府)
순군부는 고려 전기의 군사기구이다. 군사 업무를 담당하던 병부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군부가 설치되어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것은 많은 사병을 거느린 호족들이 발호하던 시대적인 상황에 기인하였다. 순군부는 병부보다 상위의 정치 조직이었으며, 경종 때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성종 때 군사제도가 2군 6위로 정착되면서 순군부의 역할이 약화하여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조진태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계의 대표적 친일 기업가이다. 원래 무과에 급제하여 20년간 관직에 있었으나, 갑오개혁 직후에 퇴직하고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식민지화 작업에 편승하여 경제계의 거물로 성장하였다. 한성은행, 대한천일은행, 조선상업은행 등 주로 금융계의 최고 경영자로 활동하였다. 친일 기업가로서 조선총독부 산업조사위원,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조진태 (趙鎭泰)
조진태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계의 대표적 친일 기업가이다. 원래 무과에 급제하여 20년간 관직에 있었으나, 갑오개혁 직후에 퇴직하고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식민지화 작업에 편승하여 경제계의 거물로 성장하였다. 한성은행, 대한천일은행, 조선상업은행 등 주로 금융계의 최고 경영자로 활동하였다. 친일 기업가로서 조선총독부 산업조사위원,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정헌태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한의군부, 신간회 동경지회 및 경성지회, 조선학생혁명당 및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형무소 이감 중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형량이 추가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
정헌태 (鄭憲台)
정헌태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한의군부, 신간회 동경지회 및 경성지회, 조선학생혁명당 및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형무소 이감 중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형량이 추가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
군사혁명위원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만든 정치 조직이다. 쿠데타 직후 만들었으며, 사흘 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도영 육군중장을 위원장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인 책임자는 박정희 소장이었다. 헌법적 근거가 전혀없는 쿠데타 세력의 임의 조직으로서 강제로 입법, 사법, 행정권을 장악하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 (軍事革命委員會)
군사혁명위원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만든 정치 조직이다. 쿠데타 직후 만들었으며, 사흘 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도영 육군중장을 위원장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인 책임자는 박정희 소장이었다. 헌법적 근거가 전혀없는 쿠데타 세력의 임의 조직으로서 강제로 입법, 사법, 행정권을 장악하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을 장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