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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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남한산성 (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태능 (太能)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조선 중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일기.
산성일기 (山城日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일기.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수어사 (守禦使)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이보(李俌)는 선조의 손자이며,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차남이다. 14세 때 선조 서(庶) 3남 의안군의 양자로 출계되었고, 능원군에 제수되었다. 류효립(柳孝立)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측실에게서 5남 3녀를 두었다. 형인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괄의 난 때 대비와 왕비를 호종하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였다. 부친이 원종으로 추숭되자, 그도 대군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종친부 유사당상, 종부시 도제조를 지냈다.
이보 (李俌)
이보(李俌)는 선조의 손자이며,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차남이다. 14세 때 선조 서(庶) 3남 의안군의 양자로 출계되었고, 능원군에 제수되었다. 류효립(柳孝立)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측실에게서 5남 3녀를 두었다. 형인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괄의 난 때 대비와 왕비를 호종하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였다. 부친이 원종으로 추숭되자, 그도 대군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종친부 유사당상, 종부시 도제조를 지냈다.
나만갑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관량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나만갑은 재주가 있었고 효성이 깊은 인물이었다. 청현직을 두루 거쳤으나 잘잘못을 논하기를 즐겨하여 대신(大臣)을 능멸한다는 죄를 자주 입었고, 또 편당(偏黨)을 즐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괄의 반란 때 힌남도원수 심기원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호종한 공로가 있었다.
나만갑 (羅萬甲)
나만갑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관량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나만갑은 재주가 있었고 효성이 깊은 인물이었다. 청현직을 두루 거쳤으나 잘잘못을 논하기를 즐겨하여 대신(大臣)을 능멸한다는 죄를 자주 입었고, 또 편당(偏黨)을 즐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괄의 반란 때 힌남도원수 심기원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호종한 공로가 있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쌍령전투 (雙嶺戰鬪)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조선후기 안동영장, 삼도수군통제사, 어영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이창운 (李昌運)
조선후기 안동영장, 삼도수군통제사, 어영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임담 (林墰)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산지에 건설된 성곽 내부에 자리한 방어취락.
산성취락 (山城聚落)
산지에 건설된 성곽 내부에 자리한 방어취락.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 서울시 송파구에 걸쳐 있는 산.
남한산 (南漢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 서울시 송파구에 걸쳐 있는 산.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남한산성 축성자 이회와 그의 처첩을 모신 사당.
청량당 (淸涼堂)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남한산성 축성자 이회와 그의 처첩을 모신 사당.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은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이다. 이회(李晦) 장군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수호신으로 산성 내 청량당에 모셔져 있다.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맡은 이회 장군은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훗날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배씨무당이, 이후에는 김보살이 당을 관리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산성 도당굿보존회 주관하에 도당굿을 행하고 있다. 이 도당굿은 남한산성의 무속신앙과 신당의 역할을 밝히는 문화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 (南漢山城 鷹堂王神 都堂굿)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은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이다. 이회(李晦) 장군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수호신으로 산성 내 청량당에 모셔져 있다.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맡은 이회 장군은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훗날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배씨무당이, 이후에는 김보살이 당을 관리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산성 도당굿보존회 주관하에 도당굿을 행하고 있다. 이 도당굿은 남한산성의 무속신앙과 신당의 역할을 밝히는 문화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에 있는 조선후기 선승 각성이 창건한 사찰.
남한산성 국청사 (南漢山城 國淸寺)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에 있는 조선후기 선승 각성이 창건한 사찰.
조선후기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항 (李沆)
조선후기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웅 (李命雄)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도총섭 (都摠攝)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 양구현감, 함경도선유어사,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목서흠 (睦敍欽)
조선 후기에, 양구현감, 함경도선유어사,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민영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쌍령전투에서 순절한 무신으로 만력(萬曆) 연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이산부사, 정평부사를 지냈다. 1635년(인조 13) 10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12월 청군이 침입하자 경상도의 근왕병을 거느리고 좌병사 허완과 함께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하여 쌍령에서 청군과의 전투 끝에 순절하였다. 병조판서로 증직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민영 (閔栐)
민영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쌍령전투에서 순절한 무신으로 만력(萬曆) 연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이산부사, 정평부사를 지냈다. 1635년(인조 13) 10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12월 청군이 침입하자 경상도의 근왕병을 거느리고 좌병사 허완과 함께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하여 쌍령에서 청군과의 전투 끝에 순절하였다. 병조판서로 증직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 후기에, 진주목사, 공조정랑,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중 (李明中)
조선 후기에, 진주목사, 공조정랑,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