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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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전민변정도감 (田民辨整都監)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에네켄 농장은 멕시코 유카탄(Yucatan) 일대에 있는 해외한인 관련 농장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하였던 농장으로, ‘에네켄 아시엔다(henequen Hacienda)’라고 부른다.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섬유의 원료이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에네켄 농장 (Henequén 農場)
에네켄 농장은 멕시코 유카탄(Yucatan) 일대에 있는 해외한인 관련 농장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하였던 농장으로, ‘에네켄 아시엔다(henequen Hacienda)’라고 부른다.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섬유의 원료이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하며 항일언론활동을 전개한 실업가·대종교인·독립운동가.
안희제 (安熙濟)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하며 항일언론활동을 전개한 실업가·대종교인·독립운동가.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사패(賜牌)를 통해 지급한 토지.
사패전 (賜牌田)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사패(賜牌)를 통해 지급한 토지.
아프리카 서부 기니아 만에 면하여 있는 공화국.
가나 (Ghana)
아프리카 서부 기니아 만에 면하여 있는 공화국.
남아메리카 중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브라질 (Brazil)
남아메리카 중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강혜원 (康蕙園)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길수 (韓吉洙)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북률동척농장 소작쟁의는 1924년부터 1925년까지 황해도 재령군 북률동척농장의 소작농민들이 지주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전개한 소작농민항쟁이다. 일제의 토지 조사에 의해 조선시대 궁장토를 경작하던 북률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1908년 일제는 북률동척농장을 설립하여 식민적 지주권을 강화하였는데 1924년부터 일본인의 이상촌을 건설할 목적으로 일본인 이주민에게 한국인 소작지를 박탈하여 넘겨 주었다. 이에 한국 소작인들은 연좌시위를 하며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타협안이 제시되어 쟁의는 일단락되었으나 소작인에 대한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
북률동척농장 소작쟁의 (北栗東拓農場 小作爭議)
북률동척농장 소작쟁의는 1924년부터 1925년까지 황해도 재령군 북률동척농장의 소작농민들이 지주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전개한 소작농민항쟁이다. 일제의 토지 조사에 의해 조선시대 궁장토를 경작하던 북률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1908년 일제는 북률동척농장을 설립하여 식민적 지주권을 강화하였는데 1924년부터 일본인의 이상촌을 건설할 목적으로 일본인 이주민에게 한국인 소작지를 박탈하여 넘겨 주었다. 이에 한국 소작인들은 연좌시위를 하며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타협안이 제시되어 쟁의는 일단락되었으나 소작인에 대한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신흥학우단 (新興學友團)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1904년 한국에서 소작제 대농장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인 지주회사이다. 1904년 9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전국에 6개의 농장 관리소를 두었는데, 경지 면적은 1만 7300여 정보, 소작인은 1만 6500여 명에 달하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일본인 지주 자본 중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제외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최대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회사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 (朝鮮興業株式會社)
조선흥업주식회사는 1904년 한국에서 소작제 대농장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인 지주회사이다. 1904년 9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전국에 6개의 농장 관리소를 두었는데, 경지 면적은 1만 7300여 정보, 소작인은 1만 6500여 명에 달하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일본인 지주 자본 중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제외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최대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회사였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강영소 (姜永韶)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제상회 (金兄弟商會)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김형순 (金衡珣)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황만금은 소련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폴리타젤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19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에서 태어나 1937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다. 1953년 플리타젤 집단농장의 선임자로 선임되어 농장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만들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무죄임이 밝혀졌다. 폴리타젤 집단농장의 명예회장을 맡아 여생을 보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노동영웅’이라고 불렸으며, 레닌 훈장과 10월혁명 훈장을 받았다.
황만금 (黃萬金)
황만금은 소련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폴리타젤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19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에서 태어나 1937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다. 1953년 플리타젤 집단농장의 선임자로 선임되어 농장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만들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무죄임이 밝혀졌다. 폴리타젤 집단농장의 명예회장을 맡아 여생을 보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노동영웅’이라고 불렸으며, 레닌 훈장과 10월혁명 훈장을 받았다.
북한에서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농장.
국영농장 (國營農場)
북한에서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농장.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과 낙동강 사이에 발달된 퇴적평야.
대산평야 (大山平野)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과 낙동강 사이에 발달된 퇴적평야.
1962년 브라질 교포 백옥빈이 브라질에 정착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 해외한인문헌.
백옥빈 일기 (白玉彬 日記)
1962년 브라질 교포 백옥빈이 브라질에 정착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 해외한인문헌.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공립협회 · 대한신민회 ·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독립운동을 지원한 실업가이다. 1876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1903년 노동 이민으로 하와이로 왔다가 1904년경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1905년 4월 안창호가 공립협회를 설립할 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20년 2월 윌로스에서 한인비행가양성소를 설립할 때 신광희와 함께 재무가 되어 비행학교를 적극 후원하였다. 1943년 진보적 언론인 『독립』을 적극 후원하면서 친공적 성향의 인사로 활동하였다. 2018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이재수 (李在洙)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공립협회 · 대한신민회 ·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독립운동을 지원한 실업가이다. 1876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1903년 노동 이민으로 하와이로 왔다가 1904년경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1905년 4월 안창호가 공립협회를 설립할 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20년 2월 윌로스에서 한인비행가양성소를 설립할 때 신광희와 함께 재무가 되어 비행학교를 적극 후원하였다. 1943년 진보적 언론인 『독립』을 적극 후원하면서 친공적 성향의 인사로 활동하였다. 2018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