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동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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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단과 의성단을 조직하여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파 숙청 활동을 전개하였고, 정의부 재정분과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승진 (承震)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단과 의성단을 조직하여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파 숙청 활동을 전개하였고, 정의부 재정분과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이선근 (李瑄根)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신백우 (申伯雨)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제2, 4, 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영인.
홍길선 (洪吉善)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제2, 4, 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영인.
1945년 12월 21일 서울 천도교 대강당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청년단체들을 망라해 조직된 우익청년단체 연합체.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大韓獨立促成全國靑年總聯盟)
1945년 12월 21일 서울 천도교 대강당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청년단체들을 망라해 조직된 우익청년단체 연합체.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승하 (朴勝夏)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양병일 (梁炳日)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전라남도 일대 민정조사반, 교통체신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정치인.
김교중 (金敎中)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전라남도 일대 민정조사반, 교통체신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한성은행 본정지점 지배인 대리, 동아일보 여수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여수지부 문화부장,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문평 (金汶枰)
일제강점기 때, 한성은행 본정지점 지배인 대리, 동아일보 여수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여수지부 문화부장,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
김종선 (金鍾善)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
대동청년당 묵호읍단부 단장 ·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12월 2일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 갑구 대동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6월 국회 상임위원회 운수체신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5년 자유당 조사부 차장으로 재직했으며, 1956년 9월부터 사단법인 대한군경원호회 전임 부회장을 맡아 1960년 4·19혁명 때까지 재임했다. 1997년 대한민국 헌정회 편집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건국회 상임고문 및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2년 2월 9일 사망했다.
원장길 (元長吉)
대동청년당 묵호읍단부 단장 ·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12월 2일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 갑구 대동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6월 국회 상임위원회 운수체신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5년 자유당 조사부 차장으로 재직했으며, 1956년 9월부터 사단법인 대한군경원호회 전임 부회장을 맡아 1960년 4·19혁명 때까지 재임했다. 1997년 대한민국 헌정회 편집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건국회 상임고문 및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2년 2월 9일 사망했다.
윤재욱은 대동청년단 영등포구 단장 겸 상임위원,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의사이다. 1910년 경기도 안성군 출생이며, 피어선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해방 후 영등포청년회를 조직해 좌익청년 및 노동자와 맞섰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유보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공화당과 자유당에서 활동했다. 1972년 유신 지지 성명서 발표에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동참했다. 1996년 사망했다.
윤재욱 (尹在旭)
윤재욱은 대동청년단 영등포구 단장 겸 상임위원,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의사이다. 1910년 경기도 안성군 출생이며, 피어선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해방 후 영등포청년회를 조직해 좌익청년 및 노동자와 맞섰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유보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공화당과 자유당에서 활동했다. 1972년 유신 지지 성명서 발표에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동참했다. 1996년 사망했다.
제헌국회의원, 광주NCC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지도부로 참여한 정치인.
이성학 (李聖學)
제헌국회의원, 광주NCC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지도부로 참여한 정치인.
김사용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교남학우회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면서 1920년 '폭탄밀조사건', 1923년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의 거사 계획 사건으로 체포된 독립유공자이다.
김사용 (金思容)
김사용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교남학우회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면서 1920년 '폭탄밀조사건', 1923년 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의 거사 계획 사건으로 체포된 독립유공자이다.
이수영은 대한제국기인 1909년 대동청년당, 일제강점기인 1919년 의열단,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2~1923년 의열단과 서로군정서의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3년 '경북의용단사건'으로 체포되어 1924년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
이수영 (李遂榮)
이수영은 대한제국기인 1909년 대동청년당, 일제강점기인 1919년 의열단,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2~1923년 의열단과 서로군정서의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3년 '경북의용단사건'으로 체포되어 1924년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
진승국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여러 학교의 교원과 각종 청년단체를 거쳐 자유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1914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릿쿄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외국어학원, 숙명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교원을 지냈다. 해방 직후에는 우익 청년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여당인 자유당에서 정치활동을 하였다. 자유당 내 비족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5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정계 활동이 없다가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진승국 (陳承國)
진승국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여러 학교의 교원과 각종 청년단체를 거쳐 자유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1914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릿쿄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외국어학원, 숙명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교원을 지냈다. 해방 직후에는 우익 청년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여당인 자유당에서 정치활동을 하였다. 자유당 내 비족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5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정계 활동이 없다가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