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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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북간도국민회 (北間島國民會)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구춘선 (具春先)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서상용 (徐相庸)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혈성단(血誠團)은 19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외에 다른 자료가 없어 현재로선 조직의 실체와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힘들다. 다만, 단장인 홍수원(洪秀瑗)이 조직한 '경상남도전도회(慶尙南道傳道會)'와 동일한 단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혈성단 (血誠團)
혈성단(血誠團)은 19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외에 다른 자료가 없어 현재로선 조직의 실체와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힘들다. 다만, 단장인 홍수원(洪秀瑗)이 조직한 '경상남도전도회(慶尙南道傳道會)'와 동일한 단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백규 (姜伯奎)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국민회 남지방회 경호대원 등을 역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장두량 (張斗良)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국민회 남지방회 경호대원 등을 역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희백 (金熙伯)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기영 (朴琪永)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찬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민족교육 활동을 벌였고, 대한독립기성총회 재무부장, 국민회, 총기구입위원, 대한국민회 참의장과 재무부장, 고려공산당 중앙총회 참사 등을 역임하였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 부의장, 국민위원회 국민위원 등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유찬희 (柳纘熙)
유찬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민족교육 활동을 벌였고, 대한독립기성총회 재무부장, 국민회, 총기구입위원, 대한국민회 참의장과 재무부장, 고려공산당 중앙총회 참사 등을 역임하였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 부의장, 국민위원회 국민위원 등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채영 (蔡永)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고평은 대한제국기 1902년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1905년 검사에 임명되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 무장단체 광복단, 독립군 의군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청산리대첩 후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러시아에서 고려혁명군을 조직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고평 (高平)
고평은 대한제국기 1902년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1905년 검사에 임명되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 무장단체 광복단, 독립군 의군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청산리대첩 후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러시아에서 고려혁명군을 조직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찬복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3일 순천군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서 파견한 차경신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찬복 (尹贊福)
윤찬복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3일 순천군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서 파견한 차경신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 (鄭燦成)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