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국민회"
검색결과 총 11건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기영 (朴琪永)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구춘선 (具春先)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희백 (金熙伯)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북간도국민회 (北間島國民會)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서상용 (徐相庸)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국민회 남지방회 경호대원 등을 역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장두량 (張斗良)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국민회 남지방회 경호대원 등을 역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혈성단(血誠團)은 19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외에 다른 자료가 없어 현재로선 조직의 실체와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힘들다. 다만, 단장인 홍수원(洪秀瑗)이 조직한 '경상남도전도회(慶尙南道傳道會)'와 동일한 단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혈성단 (血誠團)
혈성단(血誠團)은 19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외에 다른 자료가 없어 현재로선 조직의 실체와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힘들다. 다만, 단장인 홍수원(洪秀瑗)이 조직한 '경상남도전도회(慶尙南道傳道會)'와 동일한 단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채영 (蔡永)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백규 (姜伯奎)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윤찬복 (尹贊福)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정찬성 (鄭燦成)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