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애국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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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 폭탄 투척 의거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안경신 (安敬信)
일제강점기 때,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 폭탄 투척 의거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1949년 2월 24일 서울시청에서 결성된 반관반민 통합 우익여성단체.
대한부인회 (大韓婦人會)
1949년 2월 24일 서울시청에서 결성된 반관반민 통합 우익여성단체.
차경신은 일제강점기 때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평북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선천읍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졸업하고 강계 명신여학교와 함흥 영생학교, 원산 진성여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한국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선천지역 3.1운동을 주도하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독립운동과 구제사업에 힘썼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차경신 (車敬信)
차경신은 일제강점기 때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평북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선천읍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졸업하고 강계 명신여학교와 함흥 영생학교, 원산 진성여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한국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선천지역 3.1운동을 주도하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독립운동과 구제사업에 힘썼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재무부 부부장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전도부인.
김세지 (金世智)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재무부 부부장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전도부인.
일제강점기 때, 평양 대한애국부인회 총재로 활동하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오신도 (吳信道)
일제강점기 때, 평양 대한애국부인회 총재로 활동하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김성심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강서군 함종면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에는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성심 (金誠心)
김성심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강서군 함종면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에는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용복 (金用福)
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진실 (梁眞實)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 (崔順德)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 (韓永信)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 (安愛慈)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정석 (安貞錫)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겸양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숭의여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6월 한영신 등과 장로교계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1월 감리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가 출범하자,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 말 목포 정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재직 중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탁아소 설립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사업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겸양 (李謙良)
이겸양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숭의여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6월 한영신 등과 장로교계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1월 감리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가 출범하자,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 말 목포 정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재직 중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탁아소 설립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사업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화숙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9월 대한애국부인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민족대표 30명에 여성 대표로 참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 부설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사 교육을 이수하기도 하였다.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화숙 (李華淑)
이화숙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9월 대한애국부인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민족대표 30명에 여성 대표로 참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 부설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사 교육을 이수하기도 하였다.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승일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의 일원으로 군자금 등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월할 목적으로 평양 지역 감리교 여성 신자들과 함께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연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1920년 10월까지 2,400여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승일 (朴昇一)
박승일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의 일원으로 군자금 등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월할 목적으로 평양 지역 감리교 여성 신자들과 함께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연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1920년 10월까지 2,400여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매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으로 투옥된 바 있으며, 이후 진남포아동협회를 조직하여 아동 교육과 여성 계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을 맡았고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한국전쟁 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와 YWCA에서 요보호여성 구제활동, 절제운동,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평생 치과의사라는 전문성을 봉사활동에 활용하였다.
최매지 (崔梅智)
최매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으로 투옥된 바 있으며, 이후 진남포아동협회를 조직하여 아동 교육과 여성 계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을 맡았고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한국전쟁 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와 YWCA에서 요보호여성 구제활동, 절제운동,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평생 치과의사라는 전문성을 봉사활동에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