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인국민회"
검색결과 총 34건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LA 도산 안창호 거리 (LA 島山 安昌浩 거리)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쿠바 한인회 (Cuba 韓人會)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원용 (金元容)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島山 安昌浩 記念館)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민찬호 (閔贊鎬)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메리다 지방회 (Merida 地方會)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북미실업주식회사는 1912년 재미한인들이 설립·운영한 실업주식회사이다. 한인들이 자본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실업회사로 발전시켜 나라 독립에 기여한다는 대의를 품고 김인수, 송종익, 안창호 등이 설립하였다. 로스엔젤레스 흥사단 본부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주식금은 주로 한인 농업에 투자되었다. 3.1운동 이후, 북미실업주식회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령 받들기를 자청하는 등 재미한인 공공의 주식회사임을 자처하였다. 설립 이래 운영은 순조로웠으나, 1920년 대홍수로 큰 손실을 보는 등 운영 악화로 1929년 해산하였다.
북미실업주식회사 (北美實業株式會社)
북미실업주식회사는 1912년 재미한인들이 설립·운영한 실업주식회사이다. 한인들이 자본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실업회사로 발전시켜 나라 독립에 기여한다는 대의를 품고 김인수, 송종익, 안창호 등이 설립하였다. 로스엔젤레스 흥사단 본부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주식금은 주로 한인 농업에 투자되었다. 3.1운동 이후, 북미실업주식회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령 받들기를 자청하는 등 재미한인 공공의 주식회사임을 자처하였다. 설립 이래 운영은 순조로웠으나, 1920년 대홍수로 큰 손실을 보는 등 운영 악화로 1929년 해산하였다.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김호 (金乎)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주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족교육, 직업알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목사·독립운동가.
이대위 (李大爲)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주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족교육, 직업알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목사·독립운동가.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신한국보 (新韓國報)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국민회기념관 (國民會紀念館)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국민개병설 (國民皆兵說)
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묵경 지방회 (墨京 地方會)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쿠바 지방회는 쿠바 한인이 마탄사스에 세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1920년대 초 멕시코에서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한 한인들이 자신들을 일본 신민으로 등록하려 한 것에 반발하여 설립하였다. 이 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한인 2세 아동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독립의연금을 납부하여 광복군을 후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한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회원들이 급감하자 195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쿠바 지방회 (Cuba 地方會)
쿠바 지방회는 쿠바 한인이 마탄사스에 세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1920년대 초 멕시코에서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한 한인들이 자신들을 일본 신민으로 등록하려 한 것에 반발하여 설립하였다. 이 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한인 2세 아동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독립의연금을 납부하여 광복군을 후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한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회원들이 급감하자 195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북미대한인국민회 (北美大韓人國民會)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羅城韓人聯合長老敎會)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1940년 4월 하순 하와이에서 개최된 미주한인단체들의 대표자회의.
해외한족대회 (海外韓族大會)
1940년 4월 하순 하와이에서 개최된 미주한인단체들의 대표자회의.
쿠바의 마탄사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
민성국어학교 (民成國語學校)
쿠바의 마탄사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