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인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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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북미대한인국민회 (北美大韓人國民會)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독립운동 지원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 멕시코와 쿠바 한인이 펼친 모금 운동.
범대한인국민회 기부금 운동 (汎大韓人國民會 寄附金 運動)
독립운동 지원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 멕시코와 쿠바 한인이 펼친 모금 운동.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민찬호 (閔贊鎬)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군무위원, 국민보 주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안현경 (安顯景)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군무위원, 국민보 주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미주 본토의 한인사회에서 1910년 국치 직전 한일합병 반대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애국동맹단 (愛國同盟團)
미주 본토의 한인사회에서 1910년 국치 직전 한일합병 반대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주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족교육, 직업알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목사·독립운동가.
이대위 (李大爲)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주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족교육, 직업알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목사·독립운동가.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신광희 (申光熙)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쿠바 하바나(La Habana)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대한인국민회의의 주요 근거지로 사용된 건물. 해외독립운동유적.
아바나 국민회관 (Habana 國民會館)
쿠바 하바나(La Habana)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대한인국민회의의 주요 근거지로 사용된 건물. 해외독립운동유적.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島山 安昌浩 記念館)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김치보는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청년돈의회, 성명회, 권업회 등 한인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를 비롯한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치보 (金致寶)
김치보는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청년돈의회, 성명회, 권업회 등 한인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를 비롯한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쿠바의 마탄사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
민성국어학교 (民成國語學校)
쿠바의 마탄사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
쿠바의 카르데나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
진성국어학교 (進成國語學敎)
쿠바의 카르데나스에 설립된 한인 2세 교육기관.
쿠바 지방회는 쿠바 한인이 마탄사스에 세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1920년대 초 멕시코에서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한 한인들이 자신들을 일본 신민으로 등록하려 한 것에 반발하여 설립하였다. 이 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한인 2세 아동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독립의연금을 납부하여 광복군을 후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한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회원들이 급감하자 195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쿠바 지방회 (Cuba 地方會)
쿠바 지방회는 쿠바 한인이 마탄사스에 세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1920년대 초 멕시코에서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한 한인들이 자신들을 일본 신민으로 등록하려 한 것에 반발하여 설립하였다. 이 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한인 2세 아동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독립의연금을 납부하여 광복군을 후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한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회원들이 급감하자 195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메리다 지방회 (Merida 地方會)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묵경 지방회 (墨京 地方會)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1923년 3월에 대한인국민회가 쿠바에 세 번째로 세운 지방회이다. 마탄사스(Matanzas)에서 카르데나스(Cardenas)로 이주한 한인들의 자치 기구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의 설립 근거에 따라 한인의 자치와 권익 옹호, 교육과 실업 부흥, 조국 독립운동을 도모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구제하였다. 1950년대 초에 한인 회원이 감소하면서 해체되었지만, 1953년 초에 카르데나스 한인청년구락부가 설립하는데 영향을 주었고, 그 뒤 쿠바한인회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카르데나스 지방회 (Cárdenas 地方會)
1923년 3월에 대한인국민회가 쿠바에 세 번째로 세운 지방회이다. 마탄사스(Matanzas)에서 카르데나스(Cardenas)로 이주한 한인들의 자치 기구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의 설립 근거에 따라 한인의 자치와 권익 옹호, 교육과 실업 부흥, 조국 독립운동을 도모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구제하였다. 1950년대 초에 한인 회원이 감소하면서 해체되었지만, 1953년 초에 카르데나스 한인청년구락부가 설립하는데 영향을 주었고, 그 뒤 쿠바한인회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쿠바 한인회 (Cuba 韓人會)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이다. 1917년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등이 선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프론테라 지방회 (Frontera 地方會)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이다. 1917년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등이 선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