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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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동계 (東界)
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가리왕산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북평면과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가리왕산은 해발 고도 1561.8m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토산이다. 북쪽 사면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쪽 사면은 정선군 북평면, 서쪽과 남쪽 사면은 정선군 정선읍에 해당된다.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하며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는 등 경관과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산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알파인스키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가리왕산 (加里王山)
가리왕산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북평면과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가리왕산은 해발 고도 1561.8m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토산이다. 북쪽 사면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쪽 사면은 정선군 북평면, 서쪽과 남쪽 사면은 정선군 정선읍에 해당된다.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하며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는 등 경관과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산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알파인스키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변경취락은 인접 국가와의 접경지대 또는 새롭게 개척되는 곳에 형성된 취락이다. 변경취락은 위치상 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취락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군사적 기능을 지닌다. 변경 취락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국방상의 요충지에 주로 형성되었으며, 내륙이나 해안에서는 탐험과 개척, 자원 개발의 필요성 등에 의해 군사적 기능을 보유하지 않은 채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해양세력인 일본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제주도 역시 변경취락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변경 취락은 휴전선 근방의 취락과, 태백산지의 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변경취락 (邊境聚落)
변경취락은 인접 국가와의 접경지대 또는 새롭게 개척되는 곳에 형성된 취락이다. 변경취락은 위치상 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취락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군사적 기능을 지닌다. 변경 취락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국방상의 요충지에 주로 형성되었으며, 내륙이나 해안에서는 탐험과 개척, 자원 개발의 필요성 등에 의해 군사적 기능을 보유하지 않은 채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해양세력인 일본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제주도 역시 변경취락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변경 취락은 휴전선 근방의 취락과, 태백산지의 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박만정 (朴萬鼎)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고려후기 동계부부사, 우군지병마사, 무덕장군 관군천호 등을 역임한 무신.
박보 (朴保)
고려후기 동계부부사, 우군지병마사, 무덕장군 관군천호 등을 역임한 무신.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병마사 (兵馬使)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건천고』는 조선 후기 문신 조귀명의 시문집이다. 저자가 생전 직접 집필한 글을 시기별로 엮은 필사본 문집으로, 창작 순서에 따라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총 8책 가운데 5책만 현존하며, 1712년부터 1736년까지의 저작이 담겨 있다. 이 문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작품에 대해 이천보, 임상정 등 당대의 문예비평가들이 남긴 평점과 비평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으로, 당시 문예 수용 방식과 비평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건천고 (乾川藁)
『건천고』는 조선 후기 문신 조귀명의 시문집이다. 저자가 생전 직접 집필한 글을 시기별로 엮은 필사본 문집으로, 창작 순서에 따라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총 8책 가운데 5책만 현존하며, 1712년부터 1736년까지의 저작이 담겨 있다. 이 문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작품에 대해 이천보, 임상정 등 당대의 문예비평가들이 남긴 평점과 비평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으로, 당시 문예 수용 방식과 비평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조선 후기에,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박춘장 (朴春長)
조선 후기에,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동리산은 마을이나 동리(洞里)에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산이다. 동리산은 마을 부근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을 말하기도 하고,마을 또는 동리에서 소유한 산을 일컫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연료와 비료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건축재, 생활 물자, 분묘, 산전 개간 등을 산림에 의지했기 때문에 마을의 공동 자산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연료와 비료 체계의 변화로 동산은 매각의 과정을 거쳐 소멸된다. 그 결과 현재 동산을 보유한 마을은 단지 공동 자산의 가치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리산 (洞里山)
동리산은 마을이나 동리(洞里)에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산이다. 동리산은 마을 부근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을 말하기도 하고,마을 또는 동리에서 소유한 산을 일컫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연료와 비료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건축재, 생활 물자, 분묘, 산전 개간 등을 산림에 의지했기 때문에 마을의 공동 자산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연료와 비료 체계의 변화로 동산은 매각의 과정을 거쳐 소멸된다. 그 결과 현재 동산을 보유한 마을은 단지 공동 자산의 가치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성(九城)은 1107년(예종 2) 12월에서 1109년(예종 4) 7월 사이에 윤관이 별무반을 동원하여 고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축성한 성곽이다. 1108년(예종 3) 3월 경진일 무렵에 구축된 9성은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함주, 공험진, 의주, 통태진, 평융진이다. 1109년 7월 신유일부터 순차적으로 철수한 9성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의주, 공험진, 평융진이 빠져 있고 숭녕진, 진양진, 선화진이 추가되어 있다.
구성 (九城)
구성(九城)은 1107년(예종 2) 12월에서 1109년(예종 4) 7월 사이에 윤관이 별무반을 동원하여 고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축성한 성곽이다. 1108년(예종 3) 3월 경진일 무렵에 구축된 9성은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함주, 공험진, 의주, 통태진, 평융진이다. 1109년 7월 신유일부터 순차적으로 철수한 9성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의주, 공험진, 평융진이 빠져 있고 숭녕진, 진양진, 선화진이 추가되어 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도암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팔왕(八王)의 묘자리가 있다 하여 팔왕산으로 불리우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발행된 지형도에는 발왕산(發旺山)으로 기재되었고, 2002년에 다시 발왕산(發王山)으로 변경되었다. 이 산과 동쪽의 옥녀봉과의 사이에는 황병산에서 발원한 송천(松川)이 심한 곡류를 하며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 사면에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1997년 11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 고시된 발왕산 주목군락지가 있다. 이 주목군락지는 평균 임령 70년, 수고 6∼16m, 경급 22∼26㎝의 최고령 주목 260본을 비롯해 전나무와 기타 활엽수가 생육하는 천연림이다.
발왕산 (發王山)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도암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팔왕(八王)의 묘자리가 있다 하여 팔왕산으로 불리우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발행된 지형도에는 발왕산(發旺山)으로 기재되었고, 2002년에 다시 발왕산(發王山)으로 변경되었다. 이 산과 동쪽의 옥녀봉과의 사이에는 황병산에서 발원한 송천(松川)이 심한 곡류를 하며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 사면에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1997년 11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 고시된 발왕산 주목군락지가 있다. 이 주목군락지는 평균 임령 70년, 수고 6∼16m, 경급 22∼26㎝의 최고령 주목 260본을 비롯해 전나무와 기타 활엽수가 생육하는 천연림이다.
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김보당의 난 (金甫當의 亂)
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삭방도는 고려 성종 때 시행된 10도(十道)의 하나로서, 지금의 강원도 동부와 함경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9주(九州) 중에서 명주(溟州) 북부와 삭주(朔州) 북부, 한주(漢州) 동북부, 그리고 고려 초기에 개척한 동북방 일원으로 구성되었다. 관내에 62개 현(縣)을 두고 이를 대략 17개의 주(州)로 편제하였다. 십도제가 폐지된 뒤 동계(東界)로 칭해졌다.
삭방도 (朔方道)
삭방도는 고려 성종 때 시행된 10도(十道)의 하나로서, 지금의 강원도 동부와 함경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9주(九州) 중에서 명주(溟州) 북부와 삭주(朔州) 북부, 한주(漢州) 동북부, 그리고 고려 초기에 개척한 동북방 일원으로 구성되었다. 관내에 62개 현(縣)을 두고 이를 대략 17개의 주(州)로 편제하였다. 십도제가 폐지된 뒤 동계(東界)로 칭해졌다.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문주 (文州)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홍문관부수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권도 (權濤)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홍문관부수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스포츠 외교가로 알려진 체육인.
월터정 (Walter鄭)
해방 이후 스포츠 외교가로 알려진 체육인.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영풍 (永豊)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좁고 긴 판상에 신발을 붙인 도구를 신고 물리적인 중력의 힘과 신체의 적절한 동작을 이용하여 눈 위를 활주하는 스포츠.
스키 (ski)
좁고 긴 판상에 신발을 붙인 도구를 신고 물리적인 중력의 힘과 신체의 적절한 동작을 이용하여 눈 위를 활주하는 스포츠.
조선 후기에, 정릉참봉, 금성현령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영보 (李英輔)
조선 후기에, 정릉참봉, 금성현령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
존무사 (存撫使)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