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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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덕수궁 (德壽宮)
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한 수장가로 문화유산 수집가이다. 호는 간송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물려받은 막대한 재력과 오세창의 탁월한 감식안으로 민족 유산 수집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8년 서울 성북동 북단장 내에 보화각을 건축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설립하였다.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화적과 서예, 고려 및 조선 자기와 불상·불구·와전 등에 이르는 문화유산들을 방대하게 수장하였다. 전형필의 가옥은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전형필 (全鎣弼)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한 수장가로 문화유산 수집가이다. 호는 간송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물려받은 막대한 재력과 오세창의 탁월한 감식안으로 민족 유산 수집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8년 서울 성북동 북단장 내에 보화각을 건축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설립하였다.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화적과 서예, 고려 및 조선 자기와 불상·불구·와전 등에 이르는 문화유산들을 방대하게 수장하였다. 전형필의 가옥은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온 한국의 관전이다. 약칭으로 ‘국전’이라고도 한다.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 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창설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과 수상작 선정이 파벌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규정 개정과 공모 부분의 변화에도 관전식 아카데미즘을 고수하여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大韓民國美術展覽會)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온 한국의 관전이다. 약칭으로 ‘국전’이라고도 한다.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 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창설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과 수상작 선정이 파벌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규정 개정과 공모 부분의 변화에도 관전식 아카데미즘을 고수하여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경성은 해방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인으로 미술이론가이자 미술행정가이다. 호는 석남이다.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을 개관했고, 1947년 인천시립예술관을 창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물관의 작품을 분산시켜 보존했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유물들은 부산으로 반환하였다. 1951년 《민주신보》에 「우울한 오후의 생리-전시미술전을 보고」라는 글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미술평론을 시작하였다. 이경성은 전시 기획자, 미술관장, 미술평론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이경성 (李慶成)
이경성은 해방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인으로 미술이론가이자 미술행정가이다. 호는 석남이다.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을 개관했고, 1947년 인천시립예술관을 창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물관의 작품을 분산시켜 보존했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유물들은 부산으로 반환하였다. 1951년 《민주신보》에 「우울한 오후의 생리-전시미술전을 보고」라는 글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미술평론을 시작하였다. 이경성은 전시 기획자, 미술관장, 미술평론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건물을 세우고 설립한 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朝鮮總督府博物館)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건물을 세우고 설립한 박물관.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학로 (大學路)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왕가박물관은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박물관이다. 1907년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자, 순종을 위무한다는 목적으로 창경궁에 식물원, 동물원과 함께 이왕직에서 설립을 추진했다. 1909년 일반 공개 이후 대중의 교육과 관람에 이바지했다. 황실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불상·도자·회화 등을 수집해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1938년 소장품 가운데 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 가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왕가박물관 (李王家博物館)
이왕가박물관은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박물관이다. 1907년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자, 순종을 위무한다는 목적으로 창경궁에 식물원, 동물원과 함께 이왕직에서 설립을 추진했다. 1909년 일반 공개 이후 대중의 교육과 관람에 이바지했다. 황실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불상·도자·회화 등을 수집해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1938년 소장품 가운데 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 가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는 사립미술관.
호암미술관 (湖巖美術館)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는 사립미술관.
해방 이후 해강고려청자연구소, 해강도자미술관 등을 설립한 공예가. 도예가.
유근형 (柳根瀅)
해방 이후 해강고려청자연구소, 해강도자미술관 등을 설립한 공예가. 도예가.
해방 이후 「하오의 테라스」·「단상」·「심상」 등을 그린 추상화가.
이세득 (李世得)
해방 이후 「하오의 테라스」·「단상」·「심상」 등을 그린 추상화가.
조선총독부에서 1939년 경복궁에 세워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미술관.
조선총독부미술관 (朝鮮總督府美術館)
조선총독부에서 1939년 경복궁에 세워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미술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國立現代美術館 德壽宮館)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사립미술관.
리움미술관 (Leeum美術館)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사립미술관.
서울시 중구 미술관길에 있는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市立美術館)
서울시 중구 미술관길에 있는 미술관.
주제별로 산수·인물·사군자·화조·동물·물고기와 게·초충 등 67점의 그림이 수록된 화보집. 화첩.
근역화휘 (槿域畵彙)
주제별로 산수·인물·사군자·화조·동물·물고기와 게·초충 등 67점의 그림이 수록된 화보집. 화첩.
조선 중기의 화가 이암(李巖, 1499∼?)이 그린 영모화조도.
이암 필 화조구자도 (李巖 筆 花鳥狗子圖)
조선 중기의 화가 이암(李巖, 1499∼?)이 그린 영모화조도.
「삼현수간」은 1599년에 송취대가 송익필·성혼·이이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모아서 간행한 간찰첩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편지가 왕래한 시기는 1560년부터 1593년까지 35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서신을 교유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일상사를 비롯하여 이기·심성·사단·예론 등에 관한 학문 토론 및 처세 등에 관한 것들이다. 서간의 원본 크기는 가로 27㎝×세로 37.5㎝이다. 이 편지글은 글씨만으로도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며, 이기·심성·사단·예론 등 성리학에 관하여 토론한 것들이 많아 사상사적·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이다.
삼현수간 (三賢手簡)
「삼현수간」은 1599년에 송취대가 송익필·성혼·이이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모아서 간행한 간찰첩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편지가 왕래한 시기는 1560년부터 1593년까지 35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서신을 교유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일상사를 비롯하여 이기·심성·사단·예론 등에 관한 학문 토론 및 처세 등에 관한 것들이다. 서간의 원본 크기는 가로 27㎝×세로 37.5㎝이다. 이 편지글은 글씨만으로도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며, 이기·심성·사단·예론 등 성리학에 관하여 토론한 것들이 많아 사상사적·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박물관로(운암동)에 있는 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光州市立美術館)
광주광역시 북구 박물관로(운암동)에 있는 미술관.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에 있는 공립 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楊口郡立 朴壽根美術館)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에 있는 공립 미술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화성 마하리 백제고분군 (華城 馬霞里 百濟古墳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