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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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관서.
도부 (刀部)
백제시대의 관서.
백제시대의 관서.
객부 (客部)
백제시대의 관서.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급량부 (及梁部)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남경남해부 (南京南海府)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백제시대의 관서.
외경부 (外𢈴部)
백제시대의 관서.
백제시대의 관서.
외사부 (外舍部)
백제시대의 관서.
순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오부(五部) 중 하나인 정치체이다. 다른 노부와 달리 『삼국사기』에서의 나부와 대응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대체로 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소노부나 절노부보다 세력이 약하여 비교적 일찍 계루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노부 (順奴部)
순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오부(五部) 중 하나인 정치체이다. 다른 노부와 달리 『삼국사기』에서의 나부와 대응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대체로 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소노부나 절노부보다 세력이 약하여 비교적 일찍 계루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노부 (消奴部)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제시대의 관서.
일관부 (日官部)
백제시대의 관서.
백제시대의 관서.
점구부 (點口部)
백제시대의 관서.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정리부 (定理府)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삼국시대 고구려 오이와 함께 행인국과 선비족을 정벌한 장수.
부분노 (扶芬奴)
삼국시대 고구려 오이와 함께 행인국과 선비족을 정벌한 장수.
부윤은 조선시대에 경주 · 전주 등에 두었던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守令七事)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진관(鎭管)의 책임자인 절제사(節制使)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에 부윤이 설정된 고을은 경주 · 평양 · 전주 · 영흥 · 함흥 · 의주 · 강화 · 광주 등 8곳이었다.
부윤 (府尹)
부윤은 조선시대에 경주 · 전주 등에 두었던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守令七事)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진관(鎭管)의 책임자인 절제사(節制使)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에 부윤이 설정된 고을은 경주 · 평양 · 전주 · 영흥 · 함흥 · 의주 · 강화 · 광주 등 8곳이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신라시대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皇南大塚 北墳 金冠)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신라시대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빈객 (賓客)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발해시대의 관직.
경 (卿)
발해시대의 관직.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사로육촌 (斯盧六村)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황남리 고분군 (慶州 皇南里 古墳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려시대 종3품 무관직.
대장군 (大將軍)
고려시대 종3품 무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