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북로군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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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일은 일제강점기에 만주 지린성 훈춘현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전파하고 황병길·박정환·채덕승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장쭤린의 부하 왕잉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강병일 (姜秉一)
강병일은 일제강점기에 만주 지린성 훈춘현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전파하고 황병길·박정환·채덕승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장쭤린의 부하 왕잉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충남, 전북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노재철 (盧載喆)
일제강점기 때, 충남, 전북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강철구 (姜銕求)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김좌진 (金佐鎭)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휘하의 제3중대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찬수 (金燦洙)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휘하의 제3중대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육군연성학교 조교, 북로군정서 사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고려혁명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규식 (金奎植)
일제강점기 때, 육군연성학교 조교, 북로군정서 사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고려혁명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덕현 (金德賢)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나중소 (羅仲昭)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복영 (尹復榮)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였으며, 북로군정서 특파대장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청산리전투 승리에 일조한 독립운동가.
윤준희 (尹俊熙)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였으며, 북로군정서 특파대장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청산리전투 승리에 일조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교관, 종군장교, 고려혁명군 장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민화 (李敏華)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교관, 종군장교, 고려혁명군 장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장교, 성동사관학교 교관, 대한독립군단 위원, 신민부 경호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오상서 (吳祥瑞)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장교, 성동사관학교 교관, 대한독립군단 위원, 신민부 경호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연대장을 역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대한독립군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정 (李楨)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연대장을 역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대한독립군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에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고,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위한 비행학교 설립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이용화 (李容華)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에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고,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위한 비행학교 설립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무관연성소 교관, 북로군정서 제2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운강 (李雲岡)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무관연성소 교관, 북로군정서 제2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 북로군정서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국정 (林國楨)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 북로군정서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흥업단(興業團)은 1919년 7월 만주에서 대종교인(大倧敎人)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봉천성(奉天省) 무송현(撫松縣)에서 항일운동을 위해 윤세복(尹世復)이 대종교인과 협의해서 조직하였다. 이 지역 이주 한인(韓人)의 권익을 옹호하고,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독립군 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1년 10월 백두산 지역의 여러 독립운동단체와 함께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에 통합되었다.
흥업단 (興業團)
흥업단(興業團)은 1919년 7월 만주에서 대종교인(大倧敎人)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봉천성(奉天省) 무송현(撫松縣)에서 항일운동을 위해 윤세복(尹世復)이 대종교인과 협의해서 조직하였다. 이 지역 이주 한인(韓人)의 권익을 옹호하고,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독립군 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1년 10월 백두산 지역의 여러 독립운동단체와 함께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에 통합되었다.
배헌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운동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고국에 입국해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운동을 전개하고, 1931년 이리야구협회 창립과 함께 부회장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대한국민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배헌 (裵憲)
배헌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운동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고국에 입국해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운동을 전개하고, 1931년 이리야구협회 창립과 함께 부회장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대한국민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고평은 대한제국기 1902년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1905년 검사에 임명되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 무장단체 광복단, 독립군 의군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청산리대첩 후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러시아에서 고려혁명군을 조직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고평 (高平)
고평은 대한제국기 1902년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1905년 검사에 임명되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 무장단체 광복단, 독립군 의군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청산리대첩 후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러시아에서 고려혁명군을 조직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