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상례"
검색결과 총 18건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상례 (喪禮)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상례 (相禮)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성일 (金誠一)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백담문집』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구봉령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퇴계학파에서 학문적으로 한 축을 담당한 유학자로서 시들은 그가 외직을 지내면서 지방의 풍경을 보고 읊은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소는 주로 임금의 수신과 기강의 진작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조정 상황과 당론 타파부터 학문의 방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의 사후 손자 사위 위준이 편집하고, 이후 풍기 군수 김계광이 원집을 안동 유생 이유수 등이 속집을 각각 간행하였다.
백담문집 (栢潭文集)
『백담문집』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구봉령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퇴계학파에서 학문적으로 한 축을 담당한 유학자로서 시들은 그가 외직을 지내면서 지방의 풍경을 보고 읊은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소는 주로 임금의 수신과 기강의 진작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조정 상황과 당론 타파부터 학문의 방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의 사후 손자 사위 위준이 편집하고, 이후 풍기 군수 김계광이 원집을 안동 유생 이유수 등이 속집을 각각 간행하였다.
『승가예의문』은 조선 후기 승려였던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가 불교의 다비법(茶毘法)을 정리한 책이다. 17세기 후반에 대흥사, 갑사, 통도사, 보림사, 옥천사 등에서 5차례 간행되었다. 당시에는 『석문상의초』, 『석문가례초』, 『승가예의문』, 『다비문』, 『다비작법』 등 불교 상장례(喪葬禮)에 관한 의식집이 빈번히 간행되었다.
승가예의문 (僧家禮儀文)
『승가예의문』은 조선 후기 승려였던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가 불교의 다비법(茶毘法)을 정리한 책이다. 17세기 후반에 대흥사, 갑사, 통도사, 보림사, 옥천사 등에서 5차례 간행되었다. 당시에는 『석문상의초』, 『석문가례초』, 『승가예의문』, 『다비문』, 『다비작법』 등 불교 상장례(喪葬禮)에 관한 의식집이 빈번히 간행되었다.
상여는 장례의 발인(發靷) 절차에 따라서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葬地)까지 운구하는 상구로, 어깨에 메고 망자를 운구하는 여러 상구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고대국가 상여는 관의 사용과 죽은 자를 보낸 기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여가 사용되었다.
상여 (喪輿)
상여는 장례의 발인(發靷) 절차에 따라서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葬地)까지 운구하는 상구로, 어깨에 메고 망자를 운구하는 여러 상구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고대국가 상여는 관의 사용과 죽은 자를 보낸 기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여가 사용되었다.
부고(訃告)는 초상이 났음을 주변에 알리는 상례의 한 절차이자 용어이다. 부고의 기원은 기원전이다. 인편으로 전달하던 부고는 인쇄술, 통신의 발달로 우편 부고, 언론 매체를 활용하는 신문 부고에서 오늘날 SNS 부고 등으로 바뀌어 왔다. 부고는 부고와 조문이라는 필요충분조건에 따라 사회관계의 척도이다. 부고는 공동체 성원의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죽음 처리에 드는 비용 부담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도록 서로 연결하는 문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부고 (訃告)
부고(訃告)는 초상이 났음을 주변에 알리는 상례의 한 절차이자 용어이다. 부고의 기원은 기원전이다. 인편으로 전달하던 부고는 인쇄술, 통신의 발달로 우편 부고, 언론 매체를 활용하는 신문 부고에서 오늘날 SNS 부고 등으로 바뀌어 왔다. 부고는 부고와 조문이라는 필요충분조건에 따라 사회관계의 척도이다. 부고는 공동체 성원의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죽음 처리에 드는 비용 부담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도록 서로 연결하는 문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심상(心喪)은 상복을 입지는 않고 마음으로 치르는 상(喪)을 말한다. 주로 고인(故人)과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에 행하는데,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계모(繼母), 자모(慈母), 출모(出母), 가모(嫁母) 등을 위한 1년간의 심상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3년간의 심상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심상 (心喪)
심상(心喪)은 상복을 입지는 않고 마음으로 치르는 상(喪)을 말한다. 주로 고인(故人)과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에 행하는데,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계모(繼母), 자모(慈母), 출모(出母), 가모(嫁母) 등을 위한 1년간의 심상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3년간의 심상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성복은 사망한 지 3일이 되는 날에 망자의 친족들이 친소 관계에 따라 정해진 상복(喪服)으로 갈아입는 상례(喪禮)의 절차이다. 소렴을 마친 뒤에 먼저 수질, 요질, 교대를 착용하므로, 성복을 하는 날에는 상복과 상관 그리고 지팡이 등을 착용함으로써 상복의 전체 구성 요소를 갖춘다는 의미가 있다. 성복을 마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고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곡을 한다.
성복 (成服)
성복은 사망한 지 3일이 되는 날에 망자의 친족들이 친소 관계에 따라 정해진 상복(喪服)으로 갈아입는 상례(喪禮)의 절차이다. 소렴을 마친 뒤에 먼저 수질, 요질, 교대를 착용하므로, 성복을 하는 날에는 상복과 상관 그리고 지팡이 등을 착용함으로써 상복의 전체 구성 요소를 갖춘다는 의미가 있다. 성복을 마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고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곡을 한다.
상례(喪禮)의 오복제도(五服制度) 중 상복.
재최 (齋衰)
상례(喪禮)의 오복제도(五服制度) 중 상복.
상례(喪禮) 때 상주(喪主)가 짚는 검정빛의 대지팡이.
저장 (苴杖)
상례(喪禮) 때 상주(喪主)가 짚는 검정빛의 대지팡이.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장례 (葬禮)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례축식찬요』는 풍계(楓溪) 우덕린(禹德鱗, 1799∼1875)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축문 서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우덕린의 사촌 형제의 손자인 수석(壽石) 우상빈(禹相斌)이 친구인 조석희(趙奭熙)가 1877년에 지은 서문을 받아서 불분권(不分卷)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례축식찬요 (二禮祝式纂要)
『이례축식찬요』는 풍계(楓溪) 우덕린(禹德鱗, 1799∼1875)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축문 서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우덕린의 사촌 형제의 손자인 수석(壽石) 우상빈(禹相斌)이 친구인 조석희(趙奭熙)가 1877년에 지은 서문을 받아서 불분권(不分卷)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조선시대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정경세 (鄭經世)
조선시대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정대일(丁大一)은 조선시대부터 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해야 할 때 쓰던 호상(護喪)의 가명(假名)이다. 빨리 쓰기 위해서 성과 이름을 모두 획수가 가장 적은 글자들로 조합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이 용법이 확장되어 작자 혹은 편찬자를 대신하는 가명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정대일 (丁大一)
정대일(丁大一)은 조선시대부터 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해야 할 때 쓰던 호상(護喪)의 가명(假名)이다. 빨리 쓰기 위해서 성과 이름을 모두 획수가 가장 적은 글자들로 조합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이 용법이 확장되어 작자 혹은 편찬자를 대신하는 가명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화장(火葬)은 시신이나 유골을 불로 태워 장사를 지내는 방법이다. 힌두교의 장례 방법에서 유래하였으나, 한반도에는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일부 왕이나 승려를 화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조상 숭배 사상 때문에 국가가 화장을 엄하게 금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을 위해 화장이 다시 합법화되었고, 조선인들에게도 화장을 권장했으나 보편적 의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화장률은 낮았으나 2000년대 들어 급증하였고, 2021년 현재 화장률은 90%를 넘어섰다.
화장 (火葬)
화장(火葬)은 시신이나 유골을 불로 태워 장사를 지내는 방법이다. 힌두교의 장례 방법에서 유래하였으나, 한반도에는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일부 왕이나 승려를 화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조상 숭배 사상 때문에 국가가 화장을 엄하게 금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을 위해 화장이 다시 합법화되었고, 조선인들에게도 화장을 권장했으나 보편적 의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화장률은 낮았으나 2000년대 들어 급증하였고, 2021년 현재 화장률은 90%를 넘어섰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사립 박물관.
꼭두박물관 (꼭두博物館)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사립 박물관.
최상은 조선시대 이래 상례 때 입었던 전통 상복의 아래옷이다. 1970년 5월 이해상이 영친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최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해상은 고종 황제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의 아들인 이달용의 3남으로, 영친왕과는 재종질 관계의 인물이다. 이해상과 신계완의 딸이자 경기 여자 고등학교 졸업생인 이남주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이해상 내외 상복 일습을 기증하였는데, 여기에 최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희귀한 전통 상복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최상 (衰裳)
최상은 조선시대 이래 상례 때 입었던 전통 상복의 아래옷이다. 1970년 5월 이해상이 영친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최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해상은 고종 황제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의 아들인 이달용의 3남으로, 영친왕과는 재종질 관계의 인물이다. 이해상과 신계완의 딸이자 경기 여자 고등학교 졸업생인 이남주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이해상 내외 상복 일습을 기증하였는데, 여기에 최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희귀한 전통 상복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