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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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묘(王卿墓)는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리에 있는 대방군 장잠현 현장 왕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벽돌덧널무덤이다. 1962년 농업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네 벽과 바닥은 벽돌로 쌓은 반면, 천장은 널돌로 편평하게 덮여 있는 점은 고구려 돌방무덤과 비슷한 점이 있어 벽돌방무덤에서 돌방무덤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판단되기도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 벽돌에서는 '장잠현(守長岑) 현장(縣長) 왕경(王卿)'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대방군 장잠현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왕경묘 (王卿墓)
왕경묘(王卿墓)는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리에 있는 대방군 장잠현 현장 왕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벽돌덧널무덤이다. 1962년 농업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네 벽과 바닥은 벽돌로 쌓은 반면, 천장은 널돌로 편평하게 덮여 있는 점은 고구려 돌방무덤과 비슷한 점이 있어 벽돌방무덤에서 돌방무덤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판단되기도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 벽돌에서는 '장잠현(守長岑) 현장(縣長) 왕경(王卿)'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대방군 장잠현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대승유가만수실리왕경서(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教王經)」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혜초(慧超)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教王經)』의 앞부분에 덧붙인 서문이다. 이 서문은 『천발경』의 한역에 참여한 혜초가 780년(선덕왕 1) 중국의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 머물며 쓴 것이다. 『천발경』의 한역에 참여한 과정과 금강지(金剛智)와 불공(不空)에게 가르침을 받은 과정을 설명하고 『천발경』의 요지를 서술하고 있다.
대승유가만수실리왕경서 (大乘瑜伽曼殊室利王經序)
「대승유가만수실리왕경서(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教王經)」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혜초(慧超)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教王經)』의 앞부분에 덧붙인 서문이다. 이 서문은 『천발경』의 한역에 참여한 혜초가 780년(선덕왕 1) 중국의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 머물며 쓴 것이다. 『천발경』의 한역에 참여한 과정과 금강지(金剛智)와 불공(不空)에게 가르침을 받은 과정을 설명하고 『천발경』의 요지를 서술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경 관련 건물터.
경주 북문로 왕경 유적 (慶州 北門路 王京 遺蹟)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경 관련 건물터.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명활산성 (明活山城)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김이영 (金貽永)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경여갑당은 통일신라시대에 왕경에 설치하였던 군사조직이다. 23군호의 하나인 39여갑당을 구성하는 부대이다. 신라는 7세기 후반 노동부대로 변질된 법당을 폐지하고 그 성격을 계승한 군호 39여갑당으로 재편하면서, 이를 경여갑당·소경여갑당·외여갑당으로 나누었다. 이때 설치된 경여갑당은 39여갑당을 대표하는 부대이며, 규모도 그중에서는 가장 컸다. 군관으로는 법당주 15명, 법당감 15명, 법당화척 15명과 법당두상 45명, 법당벽주 4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경여갑당 (京餘甲幢)
경여갑당은 통일신라시대에 왕경에 설치하였던 군사조직이다. 23군호의 하나인 39여갑당을 구성하는 부대이다. 신라는 7세기 후반 노동부대로 변질된 법당을 폐지하고 그 성격을 계승한 군호 39여갑당으로 재편하면서, 이를 경여갑당·소경여갑당·외여갑당으로 나누었다. 이때 설치된 경여갑당은 39여갑당을 대표하는 부대이며, 규모도 그중에서는 가장 컸다. 군관으로는 법당주 15명, 법당감 15명, 법당화척 15명과 법당두상 45명, 법당벽주 4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경오종당은 통일신라시대, 23군호 가운데 9번째 군호로서 왕경에 설치된 5개 소부대로 구성된 보병 의장부대이다. 5종류의 옷깃 색과 만보당주 15명이 배속되었던 사실만 알려져 있다. 명칭에서 왕경에 설치된 부대임이 드러난다. 보병 지휘관인 만보당주 15명을 배속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서로 다른 옷깃 색으로 구별되는 5개 소부대를 각각 3명의 만보당주가 통솔하는 보병부대로서 일종의 의장부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오종당 (京五種幢)
경오종당은 통일신라시대, 23군호 가운데 9번째 군호로서 왕경에 설치된 5개 소부대로 구성된 보병 의장부대이다. 5종류의 옷깃 색과 만보당주 15명이 배속되었던 사실만 알려져 있다. 명칭에서 왕경에 설치된 부대임이 드러난다. 보병 지휘관인 만보당주 15명을 배속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서로 다른 옷깃 색으로 구별되는 5개 소부대를 각각 3명의 만보당주가 통솔하는 보병부대로서 일종의 의장부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시대 왕경(王京) 출신 관료들의 개인적 신분 표시로 설정된 관등체계.
경위 (京位)
신라시대 왕경(王京) 출신 관료들의 개인적 신분 표시로 설정된 관등체계.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기현 (畿縣)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오두품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 중 하나의 신분계급이다. 신라사회에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가 성립되어 있었는데, 성골·진골·6두품 다음의 계급이다. 골품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등위가 결정되었으며, 타는 수레나 사용하는 기물과 복색 및 거주하는 집의 크기 등에 제한을 받았다. 신라에 편입된 성읍국가의 지배자들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하급귀족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5두품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10관등인 대나마(大奈麻)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지방관서에서는 직접 촌민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오두품 (五頭品)
오두품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 중 하나의 신분계급이다. 신라사회에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가 성립되어 있었는데, 성골·진골·6두품 다음의 계급이다. 골품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등위가 결정되었으며, 타는 수레나 사용하는 기물과 복색 및 거주하는 집의 크기 등에 제한을 받았다. 신라에 편입된 성읍국가의 지배자들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하급귀족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5두품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10관등인 대나마(大奈麻)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지방관서에서는 직접 촌민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신라시대 주(州)에 설치된 군영·군사주둔지.
정 (停)
신라시대 주(州)에 설치된 군영·군사주둔지.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8 왕비.
정목부인 (貞穆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8 왕비.
최유청은 고려시대에 중서시랑평장사, 수사공 집현전대학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학문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의종 대에 병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170년(의종 24) 무신란의 정변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고, 명종 대에도 고위직을 유지하였다. 이는 최유청이 개인적 덕망도 있었으며, 집권 무신 권력자와 맺었던 친분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최유청 (崔惟淸)
최유청은 고려시대에 중서시랑평장사, 수사공 집현전대학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학문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의종 대에 병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170년(의종 24) 무신란의 정변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고, 명종 대에도 고위직을 유지하였다. 이는 최유청이 개인적 덕망도 있었으며, 집권 무신 권력자와 맺었던 친분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로서 수나라에 파견된 사신.
만세 (萬世)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로서 수나라에 파견된 사신.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로서 수나라에 파견된 사신.
혜문 (惠文)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로서 수나라에 파견된 사신.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연못 유적이다. 원지(園池)의 전체 형태는 동북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방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이고, 규모는 남북 최대 길이 46.3m, 동서 최대 너비 26.1m이다. 왕궁 내의 월지(月池), 용강동 원지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조경 사례를 보여주는 왕경 원지 유적으로서 가치가 높다. 2019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 (慶州 九黃洞 園池 遺蹟 一圓)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연못 유적이다. 원지(園池)의 전체 형태는 동북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방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이고, 규모는 남북 최대 길이 46.3m, 동서 최대 너비 26.1m이다. 왕궁 내의 월지(月池), 용강동 원지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조경 사례를 보여주는 왕경 원지 유적으로서 가치가 높다. 2019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