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례"
검색결과 총 29건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장례 (葬禮)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장례를 지낸 날 밤 상가에서 치르는 무속의례.
귀양풀이
제주도에서 장례를 지낸 날 밤 상가에서 치르는 무속의례.
조선시대 관곽(棺槨) 판매와 예장(禮葬 : 예식을 갖추어서 치르는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
귀후서 (歸厚署)
조선시대 관곽(棺槨) 판매와 예장(禮葬 : 예식을 갖추어서 치르는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
「달구소리」는 발이나 연춧대를 사용하여 묘(墓)를 다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묘 다지는 소리는 전국적으로 19종의 노래가 존재하는데, 「달구소리」가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인다. 선소리꾼과 달구꾼들은 선후창 방식으로 노래를 주고 받는다. 사설의 내용은 주로 묏자리가 유명한 산의 정기를 받은 명당이므로 후손들이 발복(發福)할 것이라는 내용, 가족들과의 이별에 따른 슬픔, 후손들에 대한 당부 등이다.
달구소리
「달구소리」는 발이나 연춧대를 사용하여 묘(墓)를 다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묘 다지는 소리는 전국적으로 19종의 노래가 존재하는데, 「달구소리」가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인다. 선소리꾼과 달구꾼들은 선후창 방식으로 노래를 주고 받는다. 사설의 내용은 주로 묏자리가 유명한 산의 정기를 받은 명당이므로 후손들이 발복(發福)할 것이라는 내용, 가족들과의 이별에 따른 슬픔, 후손들에 대한 당부 등이다.
뼈단지는 사람의 시체를 화장한 뒤 뼈를 추려 담아 땅에 매장할 때 사용하던 용기(容器)이다. 화장뼈를 땅에 매장하는 것은 장골(藏骨)이라고 하여 ‘장골용기’ 또는 ‘골호(骨壺)’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부장용 토기와 별차이가 없었는데 8세기경 화장뼈단지용으로 특별히 제작되었다. 점차 외용기가 커지고 모양은 둔중해지고 무늬는 쇠퇴하였다. 고려시대 이후 거의 소멸하고 대신 돌널에 화장인골을 매장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일제시대 경주 일대에서 많이 수습되었으나 학술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였다. 최근 부여 지역의 화장묘가 발굴되면서 화장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뼈단지
뼈단지는 사람의 시체를 화장한 뒤 뼈를 추려 담아 땅에 매장할 때 사용하던 용기(容器)이다. 화장뼈를 땅에 매장하는 것은 장골(藏骨)이라고 하여 ‘장골용기’ 또는 ‘골호(骨壺)’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부장용 토기와 별차이가 없었는데 8세기경 화장뼈단지용으로 특별히 제작되었다. 점차 외용기가 커지고 모양은 둔중해지고 무늬는 쇠퇴하였다. 고려시대 이후 거의 소멸하고 대신 돌널에 화장인골을 매장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일제시대 경주 일대에서 많이 수습되었으나 학술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였다. 최근 부여 지역의 화장묘가 발굴되면서 화장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령제는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무속 의례이다. 천도굿, 자리걷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자리걷이’란 망자가 돌아가시기 전에 누워 계셨던 자리를 걷어낸다는 의미이다. ‘자리걷이’라는 의례는 죽은 자가 한을 풀고 저승길을 편히 가라는 길닦음을 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자리걷이는 평안도 다리굿, 함경도 망묵굿, 황해도 진오귀굿, 서울 새남굿, 동해안 오구굿, 남해안 오귀새남굿, 전라도 씻김굿, 제주도 귀향풀이 등으로 불린다.
사령제 (死靈祭)
사령제는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무속 의례이다. 천도굿, 자리걷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자리걷이’란 망자가 돌아가시기 전에 누워 계셨던 자리를 걷어낸다는 의미이다. ‘자리걷이’라는 의례는 죽은 자가 한을 풀고 저승길을 편히 가라는 길닦음을 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자리걷이는 평안도 다리굿, 함경도 망묵굿, 황해도 진오귀굿, 서울 새남굿, 동해안 오구굿, 남해안 오귀새남굿, 전라도 씻김굿, 제주도 귀향풀이 등으로 불린다.
나례와 장례의식에 사용되었던 탈.
방상시 탈 (方相氏 탈)
나례와 장례의식에 사용되었던 탈.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훈을 남긴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관련 단체가 중심이 되어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함께 장례 위원회를 구성하여 거행하는 장례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빈소 운영, 영결식, 안장식 등의 절차로 진행되나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일부 변경하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추모를 통하여 조선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 주는 장례로서 의미가 있었으며, 해방 후에는 고인과 관계된 사회단체나 저명인사를 주축으로 한 장례로서 거행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사회 분야의 추모와 결집을 위한 장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사회장 (社會葬)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훈을 남긴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관련 단체가 중심이 되어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함께 장례 위원회를 구성하여 거행하는 장례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빈소 운영, 영결식, 안장식 등의 절차로 진행되나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일부 변경하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추모를 통하여 조선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 주는 장례로서 의미가 있었으며, 해방 후에는 고인과 관계된 사회단체나 저명인사를 주축으로 한 장례로서 거행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사회 분야의 추모와 결집을 위한 장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국상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 시행하는 상장례이다. 피장자는 빈전에서 혼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재궁에서 신주로 머무는 공간이 전환된다. 상주인 왕세자는 국왕으로 신분이 바뀌고, 천명의 승계자로서 단계별로 적절한 의례를 수행한다. 관원과 전체 신민은 상복을 입고 일상이 중단되었다가 졸곡, 상제, 담제의 기간을 거치면서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조선의 국상은 엄격한 유교적 지향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절제된 의례와 5개월 이내로 한정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역 동원 등, 백성의 부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국상 (國喪)
국상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 시행하는 상장례이다. 피장자는 빈전에서 혼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재궁에서 신주로 머무는 공간이 전환된다. 상주인 왕세자는 국왕으로 신분이 바뀌고, 천명의 승계자로서 단계별로 적절한 의례를 수행한다. 관원과 전체 신민은 상복을 입고 일상이 중단되었다가 졸곡, 상제, 담제의 기간을 거치면서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조선의 국상은 엄격한 유교적 지향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절제된 의례와 5개월 이내로 한정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역 동원 등, 백성의 부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부여 용정리 상여소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의 장례 의식에 부르는 민요이다. 출상(出喪) 전날 밤의 호상놀이와 출상날 상여(喪輿)를 운상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소리, 짝수소리, 두마디소리, 한마디소리, 반짝수소리의 5가지 노래를 상황에 맞게 부른다.
부여 용정리 상여소리 (扶餘 龍井里 喪輿소리)
「부여 용정리 상여소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의 장례 의식에 부르는 민요이다. 출상(出喪) 전날 밤의 호상놀이와 출상날 상여(喪輿)를 운상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소리, 짝수소리, 두마디소리, 한마디소리, 반짝수소리의 5가지 노래를 상황에 맞게 부른다.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상례 (喪禮)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상례 (相禮)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요여는 주로 장례에서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기물들을 실어서 장지까지 운반하던 용구이다. 왕실의 장례와 가례, 민간의 장례에서 활용한 운반 용구였다. 왕실용 요여는 왕과 관련하여 권위를 상징하면서 유의미한 기물들을, 민간용 요여는 혼백 등을 싣고서 장지까지 운반하였다. 민간에서는 망자의 영정과 교의 등으로 대체하면서 요여를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요여 (腰輿)
요여는 주로 장례에서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기물들을 실어서 장지까지 운반하던 용구이다. 왕실의 장례와 가례, 민간의 장례에서 활용한 운반 용구였다. 왕실용 요여는 왕과 관련하여 권위를 상징하면서 유의미한 기물들을, 민간용 요여는 혼백 등을 싣고서 장지까지 운반하였다. 민간에서는 망자의 영정과 교의 등으로 대체하면서 요여를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죽여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다. 순장은 세계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3세기 후반 금관가야에서 처음 출현하였으며, 5세기에 아라가야, 대가야, 비화가야, 신라 중앙과 지방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성행하다가 6세기 중엽에 소멸되었다.
순장 (殉葬)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죽여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다. 순장은 세계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3세기 후반 금관가야에서 처음 출현하였으며, 5세기에 아라가야, 대가야, 비화가야, 신라 중앙과 지방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성행하다가 6세기 중엽에 소멸되었다.
시신을 한 곳에 안치, 보존해 일정기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서 항아리나 돌방에 다시 안치하는 장례법. 이차장·복장·구토롱.
세골장 (洗骨葬)
시신을 한 곳에 안치, 보존해 일정기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서 항아리나 돌방에 다시 안치하는 장례법. 이차장·복장·구토롱.
유월장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은 달을 넘겨서 다음 달에 치르는 유교식 장례이다. 조선시대에 장례 기일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사대부가는 장례를 죽은 지 석 달 만에 지내는 삼월장(三月葬)과 유월장으로 치렀다. 예학자들은 유월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유월장은 장기(葬期)의 단기화 등 사회적 여건의 변화와 규칙 제정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최근에 유림(儒林) 장례에서 치러지기도 하였다.
유월장 (踰月葬)
유월장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은 달을 넘겨서 다음 달에 치르는 유교식 장례이다. 조선시대에 장례 기일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사대부가는 장례를 죽은 지 석 달 만에 지내는 삼월장(三月葬)과 유월장으로 치렀다. 예학자들은 유월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유월장은 장기(葬期)의 단기화 등 사회적 여건의 변화와 규칙 제정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최근에 유림(儒林) 장례에서 치러지기도 하였다.
의식요(儀式謠)는 여러 가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구연 목적 및 상황에 따라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 장례의식요(葬禮儀式謠), 신앙의식요(信仰儀式謠)로 나뉜다. 세시의식요는 한 해 중 주요 절기나 명절에 행하는 의식에서, 장례의식요는 사람이 죽어 장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리고 신앙의식요는 불교(佛敎), 무속(巫俗), 속신(俗信) 등의 의례에서 구연된다.
의식요 (儀式謠)
의식요(儀式謠)는 여러 가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구연 목적 및 상황에 따라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 장례의식요(葬禮儀式謠), 신앙의식요(信仰儀式謠)로 나뉜다. 세시의식요는 한 해 중 주요 절기나 명절에 행하는 의식에서, 장례의식요는 사람이 죽어 장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리고 신앙의식요는 불교(佛敎), 무속(巫俗), 속신(俗信) 등의 의례에서 구연된다.
이장은 기존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하는 의례이다. 개장, 천장, 면례, 천릉 등이라고도 했다. 이장 이유는 무덤에 이상이 생겨 시신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을 때이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이장 기사가 등장한다. 조선시대가 되면 훼손, 묫자리 소송, 풍수 등 다양한 이유로 이장이 빈번하였고, 19세기에는 예서에 개장(改葬)이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이장은 장사와 유사한 절차로 진행된다. 현대사회의 이장은 흩어진 무덤을 한곳에 모으거나 자연장으로 분묘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장은 무덤을 중시하는 관념에서 나온 문화이다.
이장 (移葬)
이장은 기존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하는 의례이다. 개장, 천장, 면례, 천릉 등이라고도 했다. 이장 이유는 무덤에 이상이 생겨 시신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을 때이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이장 기사가 등장한다. 조선시대가 되면 훼손, 묫자리 소송, 풍수 등 다양한 이유로 이장이 빈번하였고, 19세기에는 예서에 개장(改葬)이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이장은 장사와 유사한 절차로 진행된다. 현대사회의 이장은 흩어진 무덤을 한곳에 모으거나 자연장으로 분묘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장은 무덤을 중시하는 관념에서 나온 문화이다.
조선 후기에, 개성유수, 이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신 (李鼎臣)
조선 후기에, 개성유수, 이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도총관,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회정 (李會正)
개항기 때, 도총관,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