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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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회는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이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공포되자 일제의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화요회·북풍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가 결합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화요회가 주도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해체하고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정우회를 조직하였다. 1926년 6·10만세사건으로 궤멸될 위기에 놓였다가 동경의 사회주의 단체인 일월회 간부들의 참여로 활력을 되찾았다. 일월회의 주도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정우회 (正友會)
정우회는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이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공포되자 일제의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화요회·북풍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가 결합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화요회가 주도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해체하고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정우회를 조직하였다. 1926년 6·10만세사건으로 궤멸될 위기에 놓였다가 동경의 사회주의 단체인 일월회 간부들의 참여로 활력을 되찾았다. 일월회의 주도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해방 이후 은행감독원 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한 금융인. 정치인.
김성환 (金聖喚)
해방 이후 은행감독원 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한 금융인. 정치인.
무산자동맹회는 1922년 3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1922년 12월 22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개최한 강연회에는 1,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하였고, 참석자 가운데 양화공(洋靴工)만도 200여 명에 달하였다. 1925년 4월 사회주의단체인 화요회(火曜會) · 북풍회(北風會) · 조선노동당과 함께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26년 4월 이들 세 단체와 함께 정우회(正友會)를 발족시키고 발전적으로 해산되었다.
무산자동맹회 (無産者同盟會)
무산자동맹회는 1922년 3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1922년 12월 22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개최한 강연회에는 1,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하였고, 참석자 가운데 양화공(洋靴工)만도 200여 명에 달하였다. 1925년 4월 사회주의단체인 화요회(火曜會) · 북풍회(北風會) · 조선노동당과 함께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26년 4월 이들 세 단체와 함께 정우회(正友會)를 발족시키고 발전적으로 해산되었다.
유럽 북부 북해 연안의 유틀란트반도 및 그 동쪽 해상의 부속 도서로 구성된 입헌군주국.
덴마크 (Denmark)
유럽 북부 북해 연안의 유틀란트반도 및 그 동쪽 해상의 부속 도서로 구성된 입헌군주국.
백두진은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8년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1934년 일본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한 후 해방까지 조선은행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외자총국장, 1951년 재무부 장관, 1953년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재무장관 시절인 1951년 「임시토지수득세법」을 통과시켰으며, 1953년 통화팽창을 수습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후 민의원,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역임하였고, 10·26사건 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후 1993년 사망하였다.
백두진 (白斗鎭)
백두진은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8년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1934년 일본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한 후 해방까지 조선은행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외자총국장, 1951년 재무부 장관, 1953년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재무장관 시절인 1951년 「임시토지수득세법」을 통과시켰으며, 1953년 통화팽창을 수습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후 민의원,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역임하였고, 10·26사건 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후 1993년 사망하였다.
안광천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월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정우회선언'을 기초하여 방향전환론과 민족협동전선 결성을 주장하였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조선공산당 정치부장으로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논강」을 작성하였다. 김원봉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조직하고, 『레닌주의』를 발행하였다.
안광천 (安光泉)
안광천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월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정우회선언'을 기초하여 방향전환론과 민족협동전선 결성을 주장하였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조선공산당 정치부장으로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논강」을 작성하였다. 김원봉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조직하고, 『레닌주의』를 발행하였다.
해방 이후 국방부차관, 교통부차관, 보사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가.
이경호 (李坰鎬)
해방 이후 국방부차관, 교통부차관, 보사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가.
일월회는 192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이다. 북성회의 회원 약 20명이 동경에서 레닌 사망 1주년을 기념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동경시외에 사무소를 두고 편집부·서무부를 두어 『사상운동』과 『대중신문』 등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재일동경무산청년동맹·삼월회·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의 조직을 원조하였다. 국내운동의 파쟁을 지양하여 운동노선의 통일과 대동단결을 주장하였다. 1926년 노선이 동일한 정우회선에 따라 민족협동전선의 결성과 대중의 정치적 운동의 적극적 추진이라는 명분 아래 해체되었다.
일월회 (一月會)
일월회는 192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이다. 북성회의 회원 약 20명이 동경에서 레닌 사망 1주년을 기념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동경시외에 사무소를 두고 편집부·서무부를 두어 『사상운동』과 『대중신문』 등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재일동경무산청년동맹·삼월회·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의 조직을 원조하였다. 국내운동의 파쟁을 지양하여 운동노선의 통일과 대동단결을 주장하였다. 1926년 노선이 동일한 정우회선에 따라 민족협동전선의 결성과 대중의 정치적 운동의 적극적 추진이라는 명분 아래 해체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선전부장, 중국공산당 하북성위원회 선전부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한위건 (韓偉健)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선전부장, 중국공산당 하북성위원회 선전부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기호흥학과찬무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허진 (許璡)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기호흥학과찬무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공화당 중앙사무국 부녀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정자 (朴貞子)
공화당 중앙사무국 부녀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
화요회 (火曜會)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
한국산업은행 총재, 재무부장관, 한국은행 총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금융인·정치인.
김세련 (金世鍊)
한국산업은행 총재, 재무부장관, 한국은행 총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금융인·정치인.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태완선 (太完善)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국방부 병무국장, 국회의원,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민병권 (閔丙權)
국방부 병무국장, 국회의원,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국제학술원 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외교관·교육자.
이동원 (李東元)
국제학술원 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외교관·교육자.
국회의원,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송방용 (宋邦鏞)
국회의원,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육군 참모총장, 주 터키 특명전권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외교관·정치인.
최영희 (崔榮喜)
육군 참모총장, 주 터키 특명전권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외교관·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