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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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독립협회 (獨立協會)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1392년 왕명 출납의 실무를 담당하는 승지방을 설치하고, 정3품의 도승지를 두었다. 태종이 집권한 후 승지방을 승정원으로 독립시켰다. 세종 때에 확립된 승정원의 직제가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핵심적인 구성 인원인 6승지와 주서(注書) 2인, 서리(書吏) 28인이 있었다. 국왕의 비서기관으로 왕권의 강약에 따라 그 기능과 운영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세조 때 변칙적으로 운영되었던 원상제는 훈구대신에게 정치 권력을 집중시키는 폐단을 야기하여 세조 사후에 폐지되었다.
승정원 (承政院)
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1392년 왕명 출납의 실무를 담당하는 승지방을 설치하고, 정3품의 도승지를 두었다. 태종이 집권한 후 승지방을 승정원으로 독립시켰다. 세종 때에 확립된 승정원의 직제가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핵심적인 구성 인원인 6승지와 주서(注書) 2인, 서리(書吏) 28인이 있었다. 국왕의 비서기관으로 왕권의 강약에 따라 그 기능과 운영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세조 때 변칙적으로 운영되었던 원상제는 훈구대신에게 정치 권력을 집중시키는 폐단을 야기하여 세조 사후에 폐지되었다.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의관 (議官)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밀직사 (密直司)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군기를 맡아보던 중추원의 후신.
추밀원 (樞密院)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군기를 맡아보던 중추원의 후신.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한상룡 (韓相龍)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교전소는 1897년에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추원에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으로 구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신제도가 정착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구 제도를 절충한 법규 제정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교전소에 참여한 신구 세력 간 갈등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1899년에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어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하였다.
교전소 (校典所)
교전소는 1897년에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추원에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으로 구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신제도가 정착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구 제도를 절충한 법규 제정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교전소에 참여한 신구 세력 간 갈등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1899년에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어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하였다.
조선시대 도평의사사·중추원·돈녕부·의금부 등 1품에서 3품까지의 관직.
판사 (判事)
조선시대 도평의사사·중추원·돈녕부·의금부 등 1품에서 3품까지의 관직.
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
이병길 (李丙吉)
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
상국은 고려시대 종2품 이상의 관원을 가리키던 재상의 또다른 칭호이다.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 및 제평장사, 그리고 참지정사 · 정당문학 · 지문하성사 등 다섯 개의 관직에 있는 8인과 중추원의 판원사 · 원사 · 지원사 · 동지원사 및 부사 · 첨서원사 · 직학사 등 일곱 개의 관직에 있는 9인을 가리킨다.
상국 (相國)
상국은 고려시대 종2품 이상의 관원을 가리키던 재상의 또다른 칭호이다.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 및 제평장사, 그리고 참지정사 · 정당문학 · 지문하성사 등 다섯 개의 관직에 있는 8인과 중추원의 판원사 · 원사 · 지원사 · 동지원사 및 부사 · 첨서원사 · 직학사 등 일곱 개의 관직에 있는 9인을 가리킨다.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광정원 (光政院)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고려시대 밀직사에 소속된 관직의 하나.
대언 (代言)
고려시대 밀직사에 소속된 관직의 하나.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홍정후 (洪正厚)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고려 후기 밀직사(密直司)의 정3품 관직.
부승지 (副承旨)
고려 후기 밀직사(密直司)의 정3품 관직.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정수 (柳正秀)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집주 (執奏)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장헌식 (張憲植)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고려시대의 이속직(吏屬職).
별가 (別駕)
고려시대의 이속직(吏屬職).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장직상 (張稷相)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정인흥 (鄭寅興)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