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추원"
검색결과 총 33건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밀직사 (密直司)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당후관 (堂後官)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고려시대의 관직.
동지사 (同知事)
고려시대의 관직.
고려시대 밀직사에 소속된 관직의 하나.
대언 (代言)
고려시대 밀직사에 소속된 관직의 하나.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관제이정소 (官制釐整所)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광정원 (光政院)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교전소는 1897년에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추원에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으로 구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신제도가 정착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구 제도를 절충한 법규 제정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교전소에 참여한 신구 세력 간 갈등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1899년에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어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하였다.
교전소 (校典所)
교전소는 1897년에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추원에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으로 구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신제도가 정착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구 제도를 절충한 법규 제정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교전소에 참여한 신구 세력 간 갈등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1899년에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어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하였다.
고려시대의 이속직(吏屬職).
별가 (別駕)
고려시대의 이속직(吏屬職).
고려 후기 밀직사(密直司)의 정3품 관직.
부승지 (副承旨)
고려 후기 밀직사(密直司)의 정3품 관직.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독립협회 (獨立協會)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고려시대 중추원의 정3품 관직.
우부승선 (右副承宣)
고려시대 중추원의 정3품 관직.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 樞密院)의 정3품 관직.
우승선 (右承宣)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 樞密院)의 정3품 관직.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장헌식 (張憲植)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정인흥 (鄭寅興)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의관 (議官)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고려 전기에 중추원의 숙위와 왕명출납 등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
중대성 (中臺省)
고려 전기에 중추원의 숙위와 왕명출납 등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정수 (柳正秀)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고려시대 중추원의 관직.
직중대 (直中臺)
고려시대 중추원의 관직.
직학사는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및 청연각(淸讌閣) · 보문각(寶文閣) · 수문전(修文殿) · 집현전(集賢殿) 소속의 관원이다. 직학사의 종류는 중추원에 설치된 직학사와 청연각 · 보문각 · 수문전 · 집현전 등 전각에 배치된 직학사로 나뉜다. 중추직학사는 정3품의 중추원 관원으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숙위의 업무를 맡았다. 청연각 · 보문각 등 전각의 직학사는 국왕에게 경서를 강론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직학사 (直學士)
직학사는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및 청연각(淸讌閣) · 보문각(寶文閣) · 수문전(修文殿) · 집현전(集賢殿) 소속의 관원이다. 직학사의 종류는 중추원에 설치된 직학사와 청연각 · 보문각 · 수문전 · 집현전 등 전각에 배치된 직학사로 나뉜다. 중추직학사는 정3품의 중추원 관원으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숙위의 업무를 맡았다. 청연각 · 보문각 등 전각의 직학사는 국왕에게 경서를 강론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
이병길 (李丙吉)
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