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
설치 목적
기능과 역할 및 변천사항
이때에 몽골(원)은 고려의 관제(官制)와 용어 등이 참람하다는 지적을 하여 관제와 왕실 용어의 격하가 이루어졌는데, 태자(太子)가 세자(世子)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이 첨의부(僉議府)로, 6부(六部)가 4사(四司) 등으로 격하된 것이 바로 그 사례이다. 중추원이 밀직사로 변하게 된 것도 그 결과의 하나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忠宣王)이 밀직사를 광정원(光政院)으로 바꾸었다가, 곧 다시 밀직사로 고쳤다.
기본적인 직제(職制)는 추밀원의 직제를 유지하였으며, 사(使, 종2품) 1인, 지사사(知司事, 종2품) 2인, 동지사사(同知司事, 종2품) 3인, 부사(副使, 종2품) 4인, 지신사(知申事, 정3품) 1인, 좌 · 우승지(左右承旨, 정3품) 각 1인, 좌 · 우부승지(左右副承旨, 정3품) 각 1인, 당후관(堂後官, 정7품) 등을 두었다.
1356년(공민왕 5) 반원개혁정책(反元改革政策)에 따라 추밀원으로 바꾸었다가 1362년(공민왕 11) 다시 밀직사라고 하였다. 이때 판사사(判司事, 종2품), 사사(司使, 종2품), 지사사(종2품), 첨서사사(簽書司事, 종2품), 동지사사(종2품), 부사(정3품), 제학(提學, 정3품), 지신사(정3품), 좌 · 우대언(左右代言, 정3품), 좌 · 우부대언(左右副代言, 정3품), 당후관 등을 두었다.
의의 및 평가
아울러 재신(宰臣)과 함께 밀직이 양부의 구성원이 되며 재상(宰相)이 수적(數的)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변칙적인 내재추제(內宰樞制)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박용운, 『고려시대 중추원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논문
- 변태섭, 「고려의 중추원」(『진단학보』 41, 진단학회, 1976)
- 이익주, 「충선왕 즉위년(1298) ‘개혁정치’의 성격: 관제 개편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 7, 한국역사연구회, 1992)
- 이강한, 「고려 충렬~충정왕 대의 밀직-재신 간 전직 양상 검토」(『한국사학보』 76, 고려사학회,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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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분수에 넘쳐 너무 지나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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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직무나 직위에 관한 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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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돈이나 물품을 내어주거나 받아들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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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숙직하면서 지킴.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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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정치 또는 행정상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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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군사상의 기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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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국가의 행정 조직 및 권한을 정하는 법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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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자격이나 등급, 지위 따위의 격이 낮아짐. 또는 그것을 낮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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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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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제후국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을 임금의 아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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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특별한 명목이 없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사무.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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