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중서문하성의 재신이 백관의 서무를 관장하고, 추밀원의 추신은 군기(軍機)를 관장하도록 되어 있어 직무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재신과 추신들이 합좌해 국가의 중요 정책을 의논하고 결정했으므로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흔히 재추(宰樞), 또는 양부재상(兩府宰相), 양부 등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중서문하성은 고려 초의 광평성(廣評省)에서 비롯해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을 거쳐 1061년(문종 15)에 중서문하성으로 개칭되고 직제가 정비되었다. 추밀원은 991년(성종 10) 송나라의 제도를 모방해 숙위(宿衛)를 위한 관청으로 중추원(中樞院)이 설치되었다가 문종 때 직제가 정비되면서 재부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1095년(헌종 9) 추밀원으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양부 체제가 성립한 것은 중추원이 재부로 승격된 문종 때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으로 중서문하성이 첨의부(僉議府)로, 추밀원이 밀직사(密直司)로 각각 개편됨으로써 첨의부 · 밀직사를 양부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