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친일"
검색결과 총 39건
일진회는 1904년에서 1910년 사이 송병준의 유신회를 개칭한 일진회에 이용구의 진보회를 흡수 통합한 친일단체이다. 1904년 일본에서 귀국한 송병준이 독립협회의 회원 윤시병·유학주 등과 접촉하여 유신회를 조직한 후 일진회로 개칭하고 진보회를 흡수하였다. 외교권 이양을 제창한 ‘일진회선언서’를 발표하고 고종의 양위를 강요하는 등 일제의 침략에 동조하였다. 1907년 전국적인 항일의병이 일어나자 자위단을 조직하여 의병 탄압에 앞장섰다. 일제의 합방요구에 호응하여 ‘정합방 상소문’을 제출하는 등 망국을 초래한 매국 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일진회 (一進會)
일진회는 1904년에서 1910년 사이 송병준의 유신회를 개칭한 일진회에 이용구의 진보회를 흡수 통합한 친일단체이다. 1904년 일본에서 귀국한 송병준이 독립협회의 회원 윤시병·유학주 등과 접촉하여 유신회를 조직한 후 일진회로 개칭하고 진보회를 흡수하였다. 외교권 이양을 제창한 ‘일진회선언서’를 발표하고 고종의 양위를 강요하는 등 일제의 침략에 동조하였다. 1907년 전국적인 항일의병이 일어나자 자위단을 조직하여 의병 탄압에 앞장섰다. 일제의 합방요구에 호응하여 ‘정합방 상소문’을 제출하는 등 망국을 초래한 매국 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
춘생문사건 (春生門事件)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윤치호 일기 (尹致昊 日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친일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협조한 문학이다. 중일전쟁 이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작가들로 하여금 특정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하곤 했지만, 특정한 내용을 다루라는 주문은 하지 않았다. 일제말에 이르면 조선총독부는 문학의 내용에 깊이 개입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이바지한 문학을 친일협력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자발적인 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나 독립적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친일 작가의 언어 선택에 따라 국민문학론, 이중언어론, 조선어 전용론으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친일문학 (親日文學)
친일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협조한 문학이다. 중일전쟁 이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작가들로 하여금 특정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하곤 했지만, 특정한 내용을 다루라는 주문은 하지 않았다. 일제말에 이르면 조선총독부는 문학의 내용에 깊이 개입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이바지한 문학을 친일협력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자발적인 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나 독립적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친일 작가의 언어 선택에 따라 국민문학론, 이중언어론, 조선어 전용론으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대동보국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장인환 (張仁煥)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대동보국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조선후기 어영대장, 한성부윤, 독판내무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정희 (申正熙)
조선후기 어영대장, 한성부윤, 독판내무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 (大正實業親睦會)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개항기 형조판서, 시종원경 등을 역임한 관료.
이재순 (李載純)
개항기 형조판서, 시종원경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유도연합회는 1939년 조선총독부가 지원하여 조직한 전국 규모의 유림단체이다. 1932년 조선총독부의 대폭적인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유교회가 유명무실해지자 전시체제에 유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관변 유림단체이다.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를 진흥시키고 황국신민으로서 굳게 단결시키며,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여 일본·만주·중국을 연결하는 영구 평화의 정신적 연계를 만들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기관지인 『유도』를 창간하여 1944년까지 제7호를 간행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였다.
조선유도연합회 (朝鮮儒道聯合會)
조선유도연합회는 1939년 조선총독부가 지원하여 조직한 전국 규모의 유림단체이다. 1932년 조선총독부의 대폭적인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유교회가 유명무실해지자 전시체제에 유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관변 유림단체이다.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를 진흥시키고 황국신민으로서 굳게 단결시키며,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여 일본·만주·중국을 연결하는 영구 평화의 정신적 연계를 만들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기관지인 『유도』를 창간하여 1944년까지 제7호를 간행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였다.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진학문 (秦學文)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고사통(故事通)』은 1943년에 육당 최남선이 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 간행한 한국통사이다. 한국의 역사를 문화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한국 문화의 가치를 높였다는 의의가 있지만, 결국 한국과 일본 문화의 혼용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사통 (故事通)
『고사통(故事通)』은 1943년에 육당 최남선이 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 간행한 한국통사이다. 한국의 역사를 문화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한국 문화의 가치를 높였다는 의의가 있지만, 결국 한국과 일본 문화의 혼용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8년 조직되었던 친일사상조직.
조선방공협회 (朝鮮防共協會)
1938년 조직되었던 친일사상조직.
1920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국민협회 (國民協會)
1920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
1939년에 조직되었던 친일문화단체.
조선문인협회 (朝鮮文人協會)
1939년에 조직되었던 친일문화단체.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조직된 친일단체.
계림회 (鷄林會)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조직된 친일단체.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군국기무처의안 (軍國機務處議案)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대동민우회는 1936년 9월 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전향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친일 단체이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참가자들은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단체는 식민지 조선에서 결성된 최초의 전향자 친일 단체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성명서와 시국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38년 6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하고, 1941년 12월 미국 유학의 경험이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미영배격혈전대동맹을 조직하였다.
대동민우회 (大東民友會)
대동민우회는 1936년 9월 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전향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친일 단체이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참가자들은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단체는 식민지 조선에서 결성된 최초의 전향자 친일 단체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성명서와 시국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38년 6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하고, 1941년 12월 미국 유학의 경험이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미영배격혈전대동맹을 조직하였다.
1935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조선교화단체연합회 (朝鮮敎化團體聯合會)
1935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갑자구락부 (甲子俱樂部)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정인흥 (鄭寅興)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