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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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天台宗)은 고려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주도하여 창립한 불교 종단이다. 1097년(숙종2) 국청사가 창립되면서 의천이 국청사의 주지를 맡았으며, 1101년(숙종6) 국가의 주관 아래 천태종선을 별도로 시행하게 되었다. 13세기에는 요세가 주도한 백련결사가 흥행하면서 천태종이 부흥하게 되었으며, 원 황실의 후원을 받은 묘련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은 고려 후기의 대표 종단으로 성장하였다.
천태종 (天台宗)
천태종(天台宗)은 고려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주도하여 창립한 불교 종단이다. 1097년(숙종2) 국청사가 창립되면서 의천이 국청사의 주지를 맡았으며, 1101년(숙종6) 국가의 주관 아래 천태종선을 별도로 시행하게 되었다. 13세기에는 요세가 주도한 백련결사가 흥행하면서 천태종이 부흥하게 되었으며, 원 황실의 후원을 받은 묘련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은 고려 후기의 대표 종단으로 성장하였다.
강조의 정변은 고려 전기 목종 때 강조가 일으킨 정변이다. 강조가 1009년(목종 12) 목종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대량원군(大良院君), 즉 현종을 옹립한 사건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지키게 하는 한편, 김치양(金致陽)과 그의 아들 및 참소를 일삼던 유행간 등 7인을 잡아 베고 그 여당(餘黨)과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친속(親屬) 30여 인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
강조의 정변 (康兆의 政變)
강조의 정변은 고려 전기 목종 때 강조가 일으킨 정변이다. 강조가 1009년(목종 12) 목종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대량원군(大良院君), 즉 현종을 옹립한 사건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지키게 하는 한편, 김치양(金致陽)과 그의 아들 및 참소를 일삼던 유행간 등 7인을 잡아 베고 그 여당(餘黨)과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친속(親屬) 30여 인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중서면에 있었던 고려전기 승려 대각국사 의천의 청원으로 인예태후가 창건한 사찰.
개풍 국청사 (開豊 國淸寺)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중서면에 있었던 고려전기 승려 대각국사 의천의 청원으로 인예태후가 창건한 사찰.
김치양은 고려 전기 목종대에 반란을 일으킨 권신(權臣)이다. 승려 행세를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며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켰는데,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배되었다가, 목종이 즉위하면서 천추태후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관료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서경 세력에 속한 그는 목종대 종교와 신앙을 바탕으로 통치하려고 하였으며,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죽임을 당하였다.
김치양 (金致陽)
김치양은 고려 전기 목종대에 반란을 일으킨 권신(權臣)이다. 승려 행세를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며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켰는데,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배되었다가, 목종이 즉위하면서 천추태후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관료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서경 세력에 속한 그는 목종대 종교와 신앙을 바탕으로 통치하려고 하였으며,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죽임을 당하였다.
고려시대 『과정잡서』, 「정과정곡」 등을 저술한 문인.
정서 (鄭敍)
고려시대 『과정잡서』, 「정과정곡」 등을 저술한 문인.
목종은 고려 전기 고려의 제7대 왕이다. 17세에 즉위하여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였다. 또한 과거시행법을 정비하였으며, 서경(西京)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천추태후(天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김치양의 난으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강조(康兆)에게 입위를 명령하였지만, 오히려 강조에게 시해되었다.
목종 (穆宗)
목종은 고려 전기 고려의 제7대 왕이다. 17세에 즉위하여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였다. 또한 과거시행법을 정비하였으며, 서경(西京)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천추태후(天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김치양의 난으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강조(康兆)에게 입위를 명령하였지만, 오히려 강조에게 시해되었다.
고려전기 제4대 광종의 왕비.
대목왕후 (大穆王后)
고려전기 제4대 광종의 왕비.
왕후는 생전 임금의 부인이나 사후의 임금 부인에게 시호로 올리는 칭호이다.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왕후는 살아 있는 왕의 정비인 왕비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하지만 점차 작고한 왕비에게 올리는 칭호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의 왕후는 왕의 정비가 승하한 후에 올리는 칭호였다.
왕후 (王后)
왕후는 생전 임금의 부인이나 사후의 임금 부인에게 시호로 올리는 칭호이다.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왕후는 살아 있는 왕의 정비인 왕비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하지만 점차 작고한 왕비에게 올리는 칭호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의 왕후는 왕의 정비가 승하한 후에 올리는 칭호였다.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맏딸인 공주.
낙랑공주 (樂浪公主)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맏딸인 공주.
애장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재위: 800~809) 왕이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작은아버지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지만, 재위 6년에 친정을 행하여 중앙과 지방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불사(佛事)를 금지시키며 귀족 세력을 제어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였지만, 재위 10년에 김언승에게 시해되었다.
애장왕 (哀莊王)
애장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재위: 800~809) 왕이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작은아버지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지만, 재위 6년에 친정을 행하여 중앙과 지방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불사(佛事)를 금지시키며 귀족 세력을 제어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였지만, 재위 10년에 김언승에게 시해되었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령후 (大寧侯)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안종 (安宗)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강화 곤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이다. 지하식 석실과 12각 호석, 정자각 등 고려시대 능제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었으며 석실 안팎에서 청자사자삼족향로를 비롯해 당·송대 동전과 관정, 철정, 금동장식품, 구슬, 동곳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강화 곤릉 (江華 坤陵)
강화 곤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이다. 지하식 석실과 12각 호석, 정자각 등 고려시대 능제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었으며 석실 안팎에서 청자사자삼족향로를 비롯해 당·송대 동전과 관정, 철정, 금동장식품, 구슬, 동곳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신종 (神宗)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갈항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758년(경덕왕 17)에 원성왕 외가의 주도로 동·서 삼층 석탑이 조영되었고, 원성왕 즉위 이후에 사세가 확장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 동·서 삼층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되었고, 사지에는 석조 여래 좌상과 비로자나 석불 좌상 등이 남아 있다.
금오산 갈항사 (金烏山 葛項寺)
갈항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758년(경덕왕 17)에 원성왕 외가의 주도로 동·서 삼층 석탑이 조영되었고, 원성왕 즉위 이후에 사세가 확장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 동·서 삼층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되었고, 사지에는 석조 여래 좌상과 비로자나 석불 좌상 등이 남아 있다.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강종 (康宗)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안경공 (安慶公)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 평양도도순문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김속명 (金續命)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 평양도도순문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동지공거 등을 역임한 관리. 명신(名臣).
임유 (任濡)
고려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동지공거 등을 역임한 관리. 명신(名臣).
고려의 제6대 왕, 성종의 아버지로, 예성선경대왕에 추존된 왕족.
대종 (戴宗)
고려의 제6대 왕, 성종의 아버지로, 예성선경대왕에 추존된 왕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