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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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의 노동현장.
사탕수수 농장(하와이) (沙糖수수 農場(Hawaii))
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의 노동현장.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종림 (金鐘林)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동지회 (同志會)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주한인의 날 (美州韓人의 날)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1972년 한국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하와이주립대학교 부설 연구기관.
하와이주립대학교 한국학센터 (Hawaii州立大學校 韓國學center)
1972년 한국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하와이주립대학교 부설 연구기관.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강혜원 (康蕙園)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길수 (韓吉洙)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하는 한국인 제1진을 태운 이민선.
갤릭호 (Gaelic號)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하는 한국인 제1진을 태운 이민선.
1922년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되었던 한국인 친목단체.
하와이대한인교민단 (Hawaii大韓人僑民團)
1922년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되었던 한국인 친목단체.
대한제국기 하와이에서 신민회 회장을 역임한 목사.
홍승하 (洪承河)
대한제국기 하와이에서 신민회 회장을 역임한 목사.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강영소 (姜永韶)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재미한인 50년사』는 김원용이 하와이 초기 이민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한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59년에 간행한 역사서이다.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대가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호가 김원용에게 의뢰해 편찬되었다. 1959년 필사본으로 출간되었으며 2004년에 현대어로 교정하고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재출간되었다. 한인들의 이민과 생활상, 정치, 교육 및 교회 활동 등 미주 한인사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7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주 한인의 전 영역을 최초로 정리한 중요한 역사서로 의의가 있으나 반이승만적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재미한인 50년사 (在美韓人 五十年事)
『재미한인 50년사』는 김원용이 하와이 초기 이민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한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59년에 간행한 역사서이다.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대가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호가 김원용에게 의뢰해 편찬되었다. 1959년 필사본으로 출간되었으며 2004년에 현대어로 교정하고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재출간되었다. 한인들의 이민과 생활상, 정치, 교육 및 교회 활동 등 미주 한인사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7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주 한인의 전 영역을 최초로 정리한 중요한 역사서로 의의가 있으나 반이승만적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설립된 단체.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美州韓人移民百周年記念事業會)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설립된 단체.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김형순 (金衡珣)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신한국보 (新韓國報)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하와이로 이주한 김순내(미국명: Hanna Kim Liu)씨가 1949년부터 30년간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생산한 김치.
코할라 김치(하와이) (Kohala 김치(Hawaii))
하와이로 이주한 김순내(미국명: Hanna Kim Liu)씨가 1949년부터 30년간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생산한 김치.
해방 이후 하와이 총영사, 서울 중앙교회 목사 등을 역임한 목사.
김영섭 (金永燮)
해방 이후 하와이 총영사, 서울 중앙교회 목사 등을 역임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