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인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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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립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구한말에 서북학회와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을사늑약 후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간도를 오가며 간민교육회, 권업회 등을 조직하였다.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모스크바에서 임시정부로 보낸 자금을 감추고 당파적으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당하였다.
김립 (金立)
김립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구한말에 서북학회와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을사늑약 후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간도를 오가며 간민교육회, 권업회 등을 조직하였다.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모스크바에서 임시정부로 보낸 자금을 감추고 당파적으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당하였다.
김만겸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러시아 정부 국경대표부 통역원, 대한국민의회 간부를 지냈다. 1911~1912년 러시아 신문 『달료카야 오크라이나』지 서울 주재 특파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하였다. 1920년 4월 코민테른 동아비서부의 일원으로 볼세비키와 협력하면서 상하이와 국내를 포함한 한인공산당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김만겸 (金萬謙)
김만겸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러시아 정부 국경대표부 통역원, 대한국민의회 간부를 지냈다. 1911~1912년 러시아 신문 『달료카야 오크라이나』지 서울 주재 특파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하였다. 1920년 4월 코민테른 동아비서부의 일원으로 볼세비키와 협력하면서 상하이와 국내를 포함한 한인공산당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박애는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중진을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그는 귀화한 한인 사회주의자이며, 러시아혁명 초기 극동소비에트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혁명기구원회(모플) 극동부장, 코민테른 동양위원부 한국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원회 약소민족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애 (朴愛)
박애는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중진을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그는 귀화한 한인 사회주의자이며, 러시아혁명 초기 극동소비에트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혁명기구원회(모플) 극동부장, 코민테른 동양위원부 한국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원회 약소민족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진순 (朴鎭淳)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은 1919년 11월 중국 장백현(長白縣)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아래 출범하여 군사 활동, 군자금 모집, 대원 모집 활동, 교육기관 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군사부를 연해주 이만[지금의 러시아 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시켰으며, 이후 간도에 남은 본부는 광정단(匡正團)으로 재편되었다.
대한독립군비단 (大韓獨立軍備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은 1919년 11월 중국 장백현(長白縣)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아래 출범하여 군사 활동, 군자금 모집, 대원 모집 활동, 교육기관 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군사부를 연해주 이만[지금의 러시아 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시켰으며, 이후 간도에 남은 본부는 광정단(匡正團)으로 재편되었다.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김하구 (金河球)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규면 (金圭冕)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 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이한영 (李翰榮)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 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인섭 (李仁燮)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 회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장도정 (張道政)
일제강점기 한인사회당 회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조응순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재익 의병과 단지동맹에서 활동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한인사회당과 고려공산당에서 활동하였다. 한국의용군 결사대를 조직하고 대장으로서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응순 (趙應順)
조응순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재익 의병과 단지동맹에서 활동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한인사회당과 고려공산당에서 활동하였다. 한국의용군 결사대를 조직하고 대장으로서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최성우는 일제강점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으로, 일세당과 한인사회당에서 활동하였다. 러시아공산당과 러시아공산청년동맹 소속으로 코민테른에서 조선 문제를 당담하였다. 1934년에서 1935년까지 코민테른 기관지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조선공산당 행동강령에 대하여」, 「종파와의 투쟁 임무에 관한 조선공산당 발기자 그룹의 서한에 대하여」 등을 기고하였다.
최성우 (崔成宇)
최성우는 일제강점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으로, 일세당과 한인사회당에서 활동하였다. 러시아공산당과 러시아공산청년동맹 소속으로 코민테른에서 조선 문제를 당담하였다. 1934년에서 1935년까지 코민테른 기관지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조선공산당 행동강령에 대하여」, 「종파와의 투쟁 임무에 관한 조선공산당 발기자 그룹의 서한에 대하여」 등을 기고하였다.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다반군대 (다반軍隊)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제3차조선공산당사건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
전일 (全一)
일제강점기 제3차조선공산당사건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