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랑"
검색결과 총 27건
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
명동화랑 (明洞畵廊)
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
중앙공보관화랑은 1957년 2월 대한민국 정부 부처인 공보실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설립한 전시장이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열린 대부분의 사진 전시를 개최하였다. 1968년 덕수궁 안으로 이전했고, 1972년 정부의 공보관 운영 방침 변경에 따라 일반 대관 전시가 폐지될 때까지 한국사진과 미술의 대표적인 발표 공간이었다. 주명덕의 '홀트씨고아원'전, 현일영의 대부분의 개인전 등이 이곳에서 선보였다.
중앙공보관화랑 (中央公報館畫廊)
중앙공보관화랑은 1957년 2월 대한민국 정부 부처인 공보실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설립한 전시장이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열린 대부분의 사진 전시를 개최하였다. 1968년 덕수궁 안으로 이전했고, 1972년 정부의 공보관 운영 방침 변경에 따라 일반 대관 전시가 폐지될 때까지 한국사진과 미술의 대표적인 발표 공간이었다. 주명덕의 '홀트씨고아원'전, 현일영의 대부분의 개인전 등이 이곳에서 선보였다.
동화백화점화랑은 1945년 10월 서울시 중구 동화백화점 4층에 개관해서 백화점이 직접 운영했던 화랑이다. 1963년 삼성그룹이 인수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재개관할 때까지 서울의 한국사진과 미술의 중요한 전시 대부분이 열렸던 한국 예술의 대표적인 발표 공간이었다. 1948년 임석제 개인전, 1956 현일영개인전, 1957년 신선회의 제1회 발표전 등 한국사진사의 정점에 있는 전시들이 이곳에서 열렸다.
동화백화점화랑 (東和百貨店畵廊)
동화백화점화랑은 1945년 10월 서울시 중구 동화백화점 4층에 개관해서 백화점이 직접 운영했던 화랑이다. 1963년 삼성그룹이 인수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재개관할 때까지 서울의 한국사진과 미술의 중요한 전시 대부분이 열렸던 한국 예술의 대표적인 발표 공간이었다. 1948년 임석제 개인전, 1956 현일영개인전, 1957년 신선회의 제1회 발표전 등 한국사진사의 정점에 있는 전시들이 이곳에서 열렸다.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화랑초등학교 (花郞初等學校)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화랑세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김대문이 화랑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이다. 김대문은 진골귀족으로 성덕왕 때 한산주 도독이 되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승전』 과 함께 김대문의 중요한 저술로 꼽히나 『삼국사기』에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을 뿐 현존하지 않는다. 이 책의 화랑은 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진흥왕대부터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대까지로 화랑제도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전해 주는 기록으로 보고 있다. 1989년에 필사본이 발견된 후 박창화에 의한 위작설이 제기되는 등 진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화랑세기 (花郎世記)
화랑세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김대문이 화랑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이다. 김대문은 진골귀족으로 성덕왕 때 한산주 도독이 되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승전』 과 함께 김대문의 중요한 저술로 꼽히나 『삼국사기』에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을 뿐 현존하지 않는다. 이 책의 화랑은 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진흥왕대부터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대까지로 화랑제도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전해 주는 기록으로 보고 있다. 1989년에 필사본이 발견된 후 박창화에 의한 위작설이 제기되는 등 진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시랑은 삼국시대 신라 진지왕 대 국선이 된 화랑이다. 흥륜사 승려 진자가 미륵불이 세상에 화랑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여 나타난 인물이다. 진자는 웅천 수원사로 가서 미시랑을 만났으나 그가 미륵선화인지 알지 못하였다. 이후 왕경 경주에서 미시랑을 다시 만나 진지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그를 국선으로 삼았다. 미시랑은 7년 동안 활동하다가 행방을 감추었고, 진자 역시 미시랑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미시랑 (未尸郎)
미시랑은 삼국시대 신라 진지왕 대 국선이 된 화랑이다. 흥륜사 승려 진자가 미륵불이 세상에 화랑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여 나타난 인물이다. 진자는 웅천 수원사로 가서 미시랑을 만났으나 그가 미륵선화인지 알지 못하였다. 이후 왕경 경주에서 미시랑을 다시 만나 진지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그를 국선으로 삼았다. 미시랑은 7년 동안 활동하다가 행방을 감추었고, 진자 역시 미시랑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과 관련된 화랑.
명기 (明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과 관련된 화랑.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문 (金大問)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과 관련된 화랑.
안락 (安樂)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과 관련된 화랑.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국기(新羅國記)』는 당나라의 고음이 책봉사 귀숭경의 종사관으로 신라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견문록이다.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신라국기』의 기록 가운데 일부를 당나라의 영호징(令狐澄)이 『정릉유사(貞陵遺事)』에 실었고, 『신라국기』 기록이 포함된 『정릉유사』의 일문(逸文)이 『감주집(紺珠集)』과 『설부(説郛)』에 소개되었다. 『신라국기』에는 골품제와 화랑제, 망덕사(望德寺) 관련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
신라국기 (新羅國記)
『신라국기(新羅國記)』는 당나라의 고음이 책봉사 귀숭경의 종사관으로 신라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견문록이다.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신라국기』의 기록 가운데 일부를 당나라의 영호징(令狐澄)이 『정릉유사(貞陵遺事)』에 실었고, 『신라국기』 기록이 포함된 『정릉유사』의 일문(逸文)이 『감주집(紺珠集)』과 『설부(説郛)』에 소개되었다. 『신라국기』에는 골품제와 화랑제, 망덕사(望德寺) 관련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
삼국시대 신라의 사선랑(四仙郞)으로 알려진 화랑.
신라 사선 (新羅 四仙)
삼국시대 신라의 사선랑(四仙郞)으로 알려진 화랑.
삼국시대 중시, 귀당총관, 경정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대신.
죽지 (竹旨)
삼국시대 중시, 귀당총관, 경정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대신.
1942년에 조직된 창극 극단.
조선창극단 (朝鮮唱劇團)
1942년에 조직된 창극 극단.
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
처용 (處容)
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추남 (楸南)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법정동의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인사동 및 그 인근지역을 지칭함.
인사동 (仁寺洞)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법정동의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인사동 및 그 인근지역을 지칭함.
아성출판사에서 장호강의 시 60편을 수록하여 1969년에 간행한 시집.
호강전진시선 (虎崗戰陣詩選)
아성출판사에서 장호강의 시 60편을 수록하여 1969년에 간행한 시집.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고금서화관 (古今書畵館)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
한성서화관 (漢城書畵館)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