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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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삼일운동 순국 유적(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은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지역민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다. 1982년 사건 발생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수습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교회 뒤편 합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2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
화성 제암리 삼일운동 순국 유적(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은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지역민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다. 1982년 사건 발생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수습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교회 뒤편 합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2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에 소재한 물푸레나무.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 (華城 前谷里 물푸레나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에 소재한 물푸레나무.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융릉 재실 내에 소재한 개비자나무.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華城 隆陵 개榧子나무)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융릉 재실 내에 소재한 개비자나무.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사립중학교.
화성중학교 (華城中學校)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사립중학교.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화성남양초등학교 (華城南陽初等學校)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화성일기(華城日記)』는 1795년 이희평(李羲平)이 지은 일기체 기행록이다. 이희평이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구경하고 난 뒤, 그 일련의 과정과 풍경을 일기체로 남긴 기록이다. 엿새 동안 정조의 행차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면서 평소 보기 힘들었던 구경거리를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기록 가운데 자신의 심경을 함께 피력한 부분에서는 일기 문학의 문학성도 함께 엿보인다. 원본은 현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4년에 강한영(姜漢永)의 역주본이 출간되었다.
화성일기 (華城日記)
『화성일기(華城日記)』는 1795년 이희평(李羲平)이 지은 일기체 기행록이다. 이희평이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구경하고 난 뒤, 그 일련의 과정과 풍경을 일기체로 남긴 기록이다. 엿새 동안 정조의 행차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면서 평소 보기 힘들었던 구경거리를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기록 가운데 자신의 심경을 함께 피력한 부분에서는 일기 문학의 문학성도 함께 엿보인다. 원본은 현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4년에 강한영(姜漢永)의 역주본이 출간되었다.
『동국궐리지』는 1839년 공명렬이 화성궐리사를 중심으로 조선의 공씨 사적을 기록한 사적기이다. 1839년에 간행된 2권 1책의 철활자본이다. 공자의 후손 공서린이 강학하던 수원에 궐리사가 세워진 배경과, 공씨들의 세계, 봉안 성상, 국가의 녹훈, 제사 의식 등을 『궐리지』 체제에 따라 정리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에서의 공자 숭상과 공씨 가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국궐리지 (東國闕里誌)
『동국궐리지』는 1839년 공명렬이 화성궐리사를 중심으로 조선의 공씨 사적을 기록한 사적기이다. 1839년에 간행된 2권 1책의 철활자본이다. 공자의 후손 공서린이 강학하던 수원에 궐리사가 세워진 배경과, 공씨들의 세계, 봉안 성상, 국가의 녹훈, 제사 의식 등을 『궐리지』 체제에 따라 정리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에서의 공자 숭상과 공씨 가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봉림사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비봉산에 있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보물로 지정된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통해 고려 후기에 이 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발견된 복장 전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봉림사 (鳳林寺)
봉림사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비봉산에 있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보물로 지정된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통해 고려 후기에 이 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발견된 복장 전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두 사람 이상의 인력으로 물건을 옮기는 데 사용되는 도구.
반구 (搬具)
두 사람 이상의 인력으로 물건을 옮기는 데 사용되는 도구.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헌경왕후 (獻敬王后)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소 한마리가 끄는 수레.
발차 (發車)
소 한마리가 끄는 수레.
작은 짐을 나르는 기구.
동차 (童車)
작은 짐을 나르는 기구.
수원 방화수류정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수원 화성의 동북쪽 누정이다. 수원 화성의 네 개의 각루 중 동북각루의 이름이다. 1794년(정조 18)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군사지휘소부로 만들었다. 건물은 2층 구조이며 평면은 불규칙한 지형과 바위 등을 고려하여 ㄱ자형으로 지었다. 군사적 목적과 정자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조영함으로써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판 글씨는 근대의 서예가 김기승이 썼다.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누각의 독특한 평면 및 건물의 구조는 18세기 정자 건축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다.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
수원 방화수류정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수원 화성의 동북쪽 누정이다. 수원 화성의 네 개의 각루 중 동북각루의 이름이다. 1794년(정조 18)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군사지휘소부로 만들었다. 건물은 2층 구조이며 평면은 불규칙한 지형과 바위 등을 고려하여 ㄱ자형으로 지었다. 군사적 목적과 정자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조영함으로써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판 글씨는 근대의 서예가 김기승이 썼다.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누각의 독특한 평면 및 건물의 구조는 18세기 정자 건축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신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남성고등학교 (南星高等學校)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신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삼국시대 신라의 참서(讖書), 『동도성립기』 등을 저술한 승려.
안함 (安含)
삼국시대 신라의 참서(讖書), 『동도성립기』 등을 저술한 승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매교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수원고등학교 (水原高等學校)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매교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7년 정리소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날짜별로 정리해 간행한 의궤이다. 1795년 윤2월 9일 정조가 회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과 화성 행궁에 행차하여 올린 진연 및 환궁 후의 행사 등을 정리소에서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총 10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초의 활자본 의궤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의궤에는 행사 내용과 함께 행궁 배치도와 행사의 주요 장면 그림, 기물 도식, 반차도 등의 도식이 실려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7년 정리소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날짜별로 정리해 간행한 의궤이다. 1795년 윤2월 9일 정조가 회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과 화성 행궁에 행차하여 올린 진연 및 환궁 후의 행사 등을 정리소에서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총 10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초의 활자본 의궤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의궤에는 행사 내용과 함께 행궁 배치도와 행사의 주요 장면 그림, 기물 도식, 반차도 등의 도식이 실려 있다.
『성제고』는 성제에 관한 일반론 및 중국과 우리나라의 주요 성곽의 위치·축조 경위 등을 기술한 도설서이다. 필사본으로 저자나 편자는 알 수 없고, 18세기 말엽에 편찬된 것으로 추측된다. 총 3책으로 성제도설(城制圖說), 성제제론(城制諸論), 중국성제(中國城制), 동국성제(東國城制), 동국성제제론(東國城制諸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국내외 성제에 대한 인식을 모두 정리하여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화성 성역의 기본 이론서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제고 (城制考)
『성제고』는 성제에 관한 일반론 및 중국과 우리나라의 주요 성곽의 위치·축조 경위 등을 기술한 도설서이다. 필사본으로 저자나 편자는 알 수 없고, 18세기 말엽에 편찬된 것으로 추측된다. 총 3책으로 성제도설(城制圖說), 성제제론(城制諸論), 중국성제(中國城制), 동국성제(東國城制), 동국성제제론(東國城制諸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국내외 성제에 대한 인식을 모두 정리하여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화성 성역의 기본 이론서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엄치욱 (嚴致郁)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신녕초등학교 (新寧初等學校)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