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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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국립4·19민주묘지 (國立四一九民主墓地)
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곽상훈 (郭尙勳)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광장」은 최인훈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1960년 『새벽』지를 통해 발표된 600매 분량의 소설로, 이듬해인 1961년 정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월북한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주인공 이명준이 겪게 되는 분단 현실을 통해 남북 분단의 비극을 성찰적으로 형상화한 이 소설은 전후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장 (廣場)
「광장」은 최인훈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1960년 『새벽』지를 통해 발표된 600매 분량의 소설로, 이듬해인 1961년 정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월북한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주인공 이명준이 겪게 되는 분단 현실을 통해 남북 분단의 비극을 성찰적으로 형상화한 이 소설은 전후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에 솟은 용두산에 조성된 공원.
부산 용두산공원 (釜山 龍頭山公園)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에 솟은 용두산에 조성된 공원.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이기붕 (李起鵬)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5·16 (五一六)
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송요찬 (宋堯讚)
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최인규 (崔仁圭)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정치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장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학자.
신도성 (愼道晟)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정치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장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학자.
1963년 6월부터 1964년 6월까지 『세대』에 「회색의 의자」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최인훈의 장편소설.
회색인 (灰色人)
1963년 6월부터 1964년 6월까지 『세대』에 「회색의 의자」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최인훈의 장편소설.
1974년 2월부터 1975년 6월까지 『현대문학』에 17회 연재되었으며 1977년창작과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송기숙의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 (자랏골의 悲歌)
1974년 2월부터 1975년 6월까지 『현대문학』에 17회 연재되었으며 1977년창작과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송기숙의 장편소설.
해방 이후 「우리교실의 전설」, 「귀는 왜 줄창 열려 있나」 등을 저술한 소설가.
김국태 (金國泰)
해방 이후 「우리교실의 전설」, 「귀는 왜 줄창 열려 있나」 등을 저술한 소설가.
4·19 이후 조성된 혁신세력들의 정치활동.
혁신운동 (革新運動)
4·19 이후 조성된 혁신세력들의 정치활동.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장, 외무부장관 ,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허정 (許政)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장, 외무부장관 ,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1960년 2월 28일 정부와 여당의 부당한 선거개입에 항의하며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벌인 학생시위.
2·28대구학생시위 (二二八大邱學生示威)
1960년 2월 28일 정부와 여당의 부당한 선거개입에 항의하며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벌인 학생시위.
1960년 5월 22일 서울대 문리대 강당에서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및 대학교수 300여 명이 모여 결성한 교원노조 전국연합체.
한국교원노조연합회 (韓國敎員勞組聯合會)
1960년 5월 22일 서울대 문리대 강당에서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및 대학교수 300여 명이 모여 결성한 교원노조 전국연합체.
영화윤리전국위원회는 1960년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자율 영화 심의기구이다. 영화에 대한 정부 기관의 검열을 민간 자율 심의로 대체하기 위하여 영화계와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주요한 기능은 영화 개봉 전 사전 심의였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자의적 검열 대신 좀 더 유연한 규정을 만들고 포스터나 신문 광고 등에도 제약 규정을 마련해 포괄적인 심의를 행하였다. 그 덕분에 검열 체제에서는 불가능했을 『오발탄』(1961) 등의 수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해체되었다.
영화윤리전국위원회 (映畵倫理全國委員會)
영화윤리전국위원회는 1960년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자율 영화 심의기구이다. 영화에 대한 정부 기관의 검열을 민간 자율 심의로 대체하기 위하여 영화계와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주요한 기능은 영화 개봉 전 사전 심의였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자의적 검열 대신 좀 더 유연한 규정을 만들고 포스터나 신문 광고 등에도 제약 규정을 마련해 포괄적인 심의를 행하였다. 그 덕분에 검열 체제에서는 불가능했을 『오발탄』(1961) 등의 수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해체되었다.
삼팔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 대전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법 ·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회의 참여를 막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3·8민주의거 (三八民主義擧)
삼팔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 대전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법 ·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회의 참여를 막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이기택은 1960년 고려대학교 학생특위 위원장으로 4·19혁명을 주도하였다. 4·19세대 대표 주자로 정계에 입문하여 1967년 제7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992년 14대까지 7선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신민당 사무총장, 통일민주당, 통합민주당 총재를 지냈으며, 13대 국회에서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부총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지냈다.
이기택 (李基澤)
이기택은 1960년 고려대학교 학생특위 위원장으로 4·19혁명을 주도하였다. 4·19세대 대표 주자로 정계에 입문하여 1967년 제7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992년 14대까지 7선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신민당 사무총장, 통일민주당, 통합민주당 총재를 지냈으며, 13대 국회에서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부총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