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영(尹致暎)
1935년 귀국한 이후, 1936년 중앙기독교청년회 부총무, 흥업구락부 간사가 되었고, 1938년 5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9월 3일 신흥우 · 갈홍기 등과 함께 이른바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소유예[^1] 처분으로 석방된 이후 친일협력의 길을 걸었다. 1940년 1월 「황군의 무운장구를 축도함」이라는 글을 『청년』에 발표했으며, 1941년 8월에는 삼천리사에서 주최한 임전대책협의회의 대좌담회에 참여했고, 9월에는 임전대책협의회를 개칭한 임전대책협력회의 채권가두판매대에 참여했다. 같은 달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10월부터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매일신보』 · 『동양지광』 등에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글을 발표하는 한편, 1944년...